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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딸은 '일타 스캔들'을 어떻게 봤을까? [인터뷰]
[TV리포트=박설이 기자]'일타 스캔들'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 두 회차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배우들의 호연만큼은 시청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기 충분했다.'일타 스캔들'을 이끈 전도연은 마지막 회를 동료 배우들과 함께 본 다음날이었던 6일 서울 합정동에서 인터뷰를 갖고 종영 소회를 전했다. 말 많고 탈 많던 결말에 대해 전도연은 "만족스러웠다"라고 말했다."작가님은 좀 아쉬웠을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이야기로 만들기가 쉽지는 않은 작업 같아요. 해피엔딩이어서 너무 좋았어요. 행복하고 즐겁게, 가족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가족이 되는 결말로 끝난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워요."전도연은 2021년 5년 만에 '인간실격'으로 드라마에 컴백했다. 허진호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야심차게 시작한 드라마지만 4%대로 시작해 줄곧 1~2%대라는 아쉬운 시청률을 남겼다. 전도연은 흥행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을 터. '일타 스캔들' 마지막 회 19%대 시청률을 찍었고, 전도연은 갈증을 해소했다."(시청률이) 과하게 좋았어요. 저희 팀도 10%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이렇게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을 줄 몰랐어요. 작가님도 당황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 있지?' 하시더라고요. 제가 하는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죠. 그것이 갈증이라면 갈증이고요. 욕심이 생기고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대본을 읽고 선택하는 건 저인데 어느 순간 '내 생각이 대중적이지 못한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칸의 여왕'이 된 뒤, 전도연의 필모는 어둡거나 강렬했다. 달달한 로맨스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던 가운데 이 시점, '일타 스캔들'을 선택했다. '프라하의 연인' 이후 18년 만의 로코다."밝은 작품이 들어온 게 오랜만이었어요. '굿와이프'를 같이 한 CP님이 대본을 주시면서 '욕할 수 있지만 용기내서 드린다'면서 대본을 주셨어요. 그 제의가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대본을 읽고 행선의 텐션을 내가 할 수 있을까 했죠. 사실 처음에는 못할 것 같다며 거절했어요. 내가 대입이 되지 않는 대본이었거든요.이후 작가님이 보고 싶다고 하셔서 거절을 해도 실례가 안 된다면 뵙자고 했어요. 제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캐릭터 텐션도 높고 판타지이기도 한 얘기이지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얘기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전도연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요. 그 얘기에 하기로 했죠."전도연이 걱정했던 부분은 행선이라는 캐릭터가 시청자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질까 하는 점이었다. 혹여 그 오지랖이 여기저기 민폐로 보일까 봐 우려했지만, 전도연은 사랑스러운 오지라퍼로 행선 캐릭터를 완성했다."행선이가 민폐 캐릭터일까봐 걱정했지만 자기가 살고 싶고 되고 싶은 인생을 포기하면서 가족을 선택한 행선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긍정적으로,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사람들도 처음에는 '쟤는 왜 저런 오지랖이야?'라고 색안경 끼고 볼 수 있지만, 열심히 사는 행선을 보면 저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했어요."사랑스러운 행선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시작은 부담, 그리고 고민이었다. 행선이라는 캐릭터의 텐션이 버거웠기에 어떻게 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될지, 전도연은 고민했고, 자기 안에서 행선을 찾아냈다."작가님은 당신의 글에서 행선의 텐션은높지만, 내가 연기했을 때 그만큼을 하기 원하지는 않으셨어요. '전도욘 씨 모습대로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죠.사실은 작가님이 대본 리딩 때 '행선이가 좀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것 같다'고 하셔서 '저 자체가 그런데요?'라고 말했어요.(웃음) 작가님 말씀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거든요. 창작자잖아요? 작가가 생각한 캐릭터가 어쩔지, 내가 해낸 캐릭터를 (작가가) 어게 보실지, 마음에 남아있었고, 걱정도 됐었어요.하면서도 감독님에게 '잘하고 있나요? 괜찮나요'라고 확인을 했고요. 작가님 만났다고 하시면 '작가님이 뭐라세요? 보셨어요?'라고 확인했어요.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어느 정도 제가 행선이 됐다고 생각했을 때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솔직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작가님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지금 행선을 연기하며 행복하고 좋다'고요. 작가님이 '너무 감사하다. 너무 잘하고 계신다'고 답문을 주셨어요. 털어낼 수 있었죠. 한배를 탄 사람에게 동의를 얻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전도연의 말대로, 남행선이라는 캐릭터는 전도연이기에 완성된 사랑스러움이었다. 전도연 본인도 남행선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지금의 남행선은 저와 비슷한 게 엄청 많아요. 제가 느끼고 공감하는대로 행선을 표현했기 때문에. 단지 '왜 이렇게까지, 왜 이럴까?'하는 과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어느 순간 행선 캐릭터를 이해하니 사랑스럽더라고요. 왜 쓸데없이 정의감에 불타서는...그게 행선의 사랑스러움으로 다가왔어요."팬들은 전도연의 의외의 도전이 반갑다. 십수 년 만에 로코를, 그리고 첫 여성 원톱 액션물을 선택한 과감한 행보가 놀랍고, 또 그 미친 소화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길복순'도 그렇고 '일타 스캔들'도 그렇고, 이 작품들을 결정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요. 사실 너무너무 하고 싶던 장르들이거든요. 저는 제가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제가 (저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모습이 많다고 생각해요. '길복순'과 '일타 스캔들'은 그걸 보여주는 과정 중 하나이고요.'길복순은 여자 킬러에, 예산도 적지 않은 작품이라 부담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멋지게, 훌륭하게 해내고 싶어서 몸과 마음을 다해 해내려고 노력했어요. '일타 스캔들'은 처음에는 내가 대입이 안 되는 작품이었지만 작가님이 '너에게 맞는 옷을 입어'라며 길을 열어주셨죠.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해냈다기보다는 즐기고 있었더라고요. 작품할 때는 그런 (즐긴다는) 생각을 갖기 쉽지 않거든요. 지나고 나서 '좋았잖아'라고 할 수는 있지만요. 그런데 이번엔 하면서 즐거웠어요. 제가 행선이 되니,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어지더라고요."'길복순'을 찍고 '일타 스캔들' 촬영에 임했다는 전도연. 극과 극의 장르를 그처럼 완벽하게, '전도연이 아니었다면'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게 30년 경력 배우의 관록이다. 그런 전도연의 작품 선택 기준은 철저히 대본이다. 자신이 끌려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쭉 '끌리는' 작품을 택할 예정이지만, 그 기준에서 처음으로 벗어나 선택한 게, 대본도 안 나온 상태의 '길복순'이었다."변칙적으로, 처음으로 '저 할게요'라고 했어요.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어서 무서웠어요. '대본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건데 '저 이거 마음에 안 들어서 못 하겠어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30년을 연기했지만 전도연은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린다고 한다. 정경호는 앞선 인터뷰에서 그 정도 경력의 배우가 아직도 현장에 일찍 나오고, 대본을 모두 숙지하고 오며,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바가 많다고 했다."촬영을 한다는 건 공동 작업이잖아요. 나만 신경 쓰면 되는 게 아니죠. 더 많은 걸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에너지를 받고 싶어요. 그러고 싶어서 현장 가기 전에 대사 같은 걸 철저하게 준비해 가는 것도 있고요.이제는 혼자만 잘해서 잘되는 게 아닌 걸 알아요. 참여한 모두가 만족스럽고, 모두가 같은 마음이면 좋겠어요. 꼭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감독님과 이견이 있으면 충분히 이야기하고, 서로 동의를 하는 식의 작업을 하는 건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카메라 앞에 서는 게 편하지는 않아요. 뭔가 불편한데 그 안에서 편해지려 애를 쓰죠. 그 긴장감이 싫지 않아요. 불안정 속에서 무언가를 계속 찾아나가면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게 나오는 것 같아요. 준비한 연기를 한다고 끝이 아닌, 불안정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나가는 거죠.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 작은 디테일들이 나오기도 하고요."정경호는 전도연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영광'이었다며, 파트너에 대한 큰 만족감을 표했다. 전도연에게 파트너 정경호는 어떤 동료였을까?"친절하고 자상하고 상냥하고. 처음에는 그런 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면에 어느 순간 의지가 되더라고요. 든든하기도 하고. 한번은 치열 차 안에서 롱테이크를 찍었어요. 치열의 차에서 내려서 우는 씬이었는데 부담스러웠거든요. 감정이 안 나오면 어쩌나. 순간 제가 경호 씨 손을 잡으면서 '제가 진짜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했어요. 불안해서. 경호 씨가 '선배님 잘하실 거예요'라고 해줬어요. 이 사람을 의지하고 있구나, 신뢰와 믿음이 있었죠.대사량이 좀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선배니까 실수 안 하고 싶잖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실수를 해도 편안한 현장이었어요."전도연은 변신을 할 뿐, 변화에 맞춰 가려는 배우는 아니다. 작품에서 변신해야 하지만 일하는 태도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가 두렵다고 말한다."처음 일을 시작할 때 연기를 너무 사랑한 것도, 꿈이 배우였던 것도 아니었어요. 이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일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더 조심드럽고 어려워져요. 이제 편해질 법도 하지 않냐고 하는데 경력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일타 스캔들'을 30년 동안 찍은 건 아니잖아요? 글 새로움에 노출돼요. 어떻게 익숙해질 수 있겠어요? 연기를 할 때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 솔직하자, 그만큼만 해도 돼'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부터는 불안정함이 있고, 제 안에서 뭔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죠. 어떻게 익숙해질 수 있겠어요?"종영한 '일타 스캔들', 공개 예정인 '길복순'에서 전도연은 모성애를 연기했지만 색은 다르다. '일타 스캔들'에서는 엄마일 수밖에 없었던 이모로서의 사랑을, '길복순'에서는 딸을 행복하게 해주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은 워킹맘(?)의 사랑을 보여줬다. 전도연은 현실에서도 중학생 딸을 둔 엄마다. 딸은 드라마를 봤을까? 또 실제 전도연은 집에서 어떤 엄마일까? 딸을 위해 학원 앞에서 기꺼이 줄을 설 엄마일까?"재미있게 봤더라고요. 저 나온 분량 빼고.(웃음) 오글거리고 닭살 돋고 그래서 못 보겠다더라고요. 딸은 제가 로코 하는 걸 처음 본 거죠. 학원물 부분은 공감을 하더라고요. 그 안에서의 삼각관계, 멜로는 재미있게 본 것 같아요.저는 (딸과) 친구 같이 지내요. (드라마 같은) 학구열은...공부에 대해 잘 몰라서 관여할 수가 없어요. '어디 학원 다니고 싶어'라고 하면 다니게 해줄 수는 있지만, 줄 서 달라고 하면 '줄 서서 앞에 앉아서 1등 하면 해주겠다'고 할 거 같아요. (자리는) 성적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요. 1등 한다고 하면 줄 서겠지만. 그 자리에서 얼마나 집중하는지가 중요하지, 앞줄 뒷줄이 중요한가요?드라마 하면서 '진짜 이래요?'라고 물어봤어요. 이야기의 시작이 작가님이 아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입시 전쟁에 뛰어들며 본 것을 모티브로 한 것이거든요. 진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건 자식이잖아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 스스로 어떻게 살지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꼭 '너는 어느 대학 가'가 아니라, 선택이죠.제 딸도 공부 잘해요.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떨어지지 않고 조금씩 오르고 있어요. 아이 의지죠. 늘 하는 말은 '네가 생각하는 최선이면 된다'예요. 엄마인 내게, 그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최선이면, 등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직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고 해요. 진로는 본인이 정하겠죠?"딸 해이를 연기한 노윤서에 대해서는 초반 걱정을 했었다고 말한 전도연. 연기 경력이 짧기에 의아했지만 궁금했다고 한다. 영주와 재우를 맡은 이봉련, 오의식과는 연기 자체가 힐링이었다고. 학부모를 연기한 김선영, 장영남과는 다른 작품에서의 재회를 바랐다."엄청 당찬 친구예요. 어떤 순간에 있어도 기죽지 않고 할 몫을 너무 잘해내는 친구예요. 자신감도 있고 당당하고, 미소가 예쁜 친구예요.재우(오의식 분)는 진짜 친동생처럼 너무 사랑했어요. 힐링 되는 캐릭터였고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저도 신기했던 게, 뒤통수를 때리거나 하는 건 대본에 없었는데 '왜 자꾸 이렇게 되지?' 싶더라고요. 찐남매 같아서 감독님이 좋다고 하셨죠. 영주(이봉련 분)는 '이런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청 든든한 조력자죠. (행선이가) 좀 부러웠어요. 어제 봉련 씨를 만났는데 '나도 영주 같은 친구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꿈꾸는 친구의 모습 같아요.저희는 사실 이 드라마 안에 빠져 있다보니 영주와 재우의 러브라인이 너무 좋았거든요. 모두 그 커플을 응원했고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서 모두가 우리처럼 생각할 거라 생각했는데 반응이 뜻밖이어서 놀랐어요. 어제 (마지막 회 보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도 나눴어요. 가족처럼 지냈는데 족보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고.(웃음)김선영, 장영남 씨와는 작품에서 만난 적이 없더라고요. 장르적 작품을 많이 했는데, 각자 다른 류의 작품을 할 것 같은 배우가 한 화면에 있는 게 신기했어요. 엄마들 싸우는 씬에서 김선영 씨가 대사 하는 거 넋 놓고 보다 제 대사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어요.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장영남 씨는 좀 어려운가 했는데 털털하고 편한 사람이더라고요. 감독님께 여자들끼리 나오는 재미있고 유쾌한 드라마를 해주시면 안 되겠냐는 얘기도 했었어요. 짧게만 연기하기 아쉽기도 하고요."중년의 나이에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주인공이 되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전도연은 성공했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러블리한 로코가 가능했던 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전도연의 확고한 생각 덕이었을지도 모른다."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내가 로코를 이제 못하지 않나?'라고요.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알았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과연 다 나이에 맞는 삶들을 살고 있나요? 살아가면서 나이를 의식하며 살 필요는 없잖아요?로코는 내게 열려있는, 10년 뒤에도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로코가 젊은 친구들의 전유물 같지만, 사실 로코에는 많은 모습이 있을 수 있어요. 틀이 있었던 것도 몰랐지만 틀을 깼네요. 앞으로도 '내가 이렇기 때문에'라는 의식을 하지는 않으려 해요.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떨치려고 할 거 같아요. '내 마음의 풍금' 때 27살에 17살 연기를 하면서 '이거 하면 미쳤다고 하려나'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웃음)저 스스로가 체력적으로 힘들 수는 있겠죠. '나도 나이가 드나' 생각을 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배우로서 나이를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연기할 때 나이를 잊지만, 나이와 상관 없이 마지막 회 군중 속 키스신은 전도연에게 쑥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키스신은 처음이라서."많은 사람이 있는 데서 키스신을 처음 해봤어요. 거기서 제 반응 같은 건 진짜 제 반응이에요. 민망하고, 창피하기도 하고요. 감독님 눈에는 제가 뭘 해도 행선처럼 보이실 거 아니에요? 밝고 즐거워 보여서 좋아해 주셨어요."전도연은 올해 대중에게 보여줬고, 또 보여줄 두 작품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나서는 과감한 도전이 배우 전도연이 생각하기에는 '성공적'이었다. '일타 스캔들'은 시청률로 그 성공이 증명됐고, 이제 '길복순'이 남았다. 해가 갈 수록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도 커지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고 있다는 전도연이 보여줄 또 다른 엄마, '길복순'에 기대가 쏠린다."만약 꿈이 배우였고, 배우가 너무 하고 싶었던 거라면 지금하고는 또 다른 모습일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 배우라는 직업이 내게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것들을, 앞뒤 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마지막으로 전도연은 '일타 스캔들' 같은 밝은 작품을 더 많이 하고 싶다고 바랐다.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 전도연은 로코 '일타 스캔들'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시청자를 치유했기에 팬들은 한번 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한번 더 전도연의 밝은 모습을 보고 싶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매니지먼트 숲,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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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에게 물었다, 루트를 왜 그렇게 쓰냐고 [인터뷰]
[TV리포트=박설이 기자]정경호가 연기한 최치열, 그 디테일은 작가와 감독, 그리고 배우 본인의 노력 끝에 완성됐다. 학생들이 보는 곳에서 일타강사 최치열은 완벽하지만,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의 인간 최치열은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마음이 피폐한 사람이다. 그런데 남행선(전도연 분)을 만나 입맛을 되찾고 삶의 재미도 다시 느낀다. 더불어 꽁냥꽁냥 로맨스도 펼쳐진다.최치열과 정경호는 많이 다르다. 섭식장애와는 거리가 멀고, 최수영과 연예계 장수 커플 답게 사랑도 충만하며 상냥하다. tvN 인기 드라마 '일타스캔들' 종영을 맞아 최근 서울 모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정경호는 연신 스윗하고 세심한 면모로 모든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했다. 정경호는 "2023년 첫 드라마이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랐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고 종영 소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결말에 대해서는 "따뜻했다"고 말했다."전도연과 매 순간이 영광"'슬기로운 의사생활'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일타스캔들', 하지만 정경호는 이처럼 드라마가 성공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그는 "주변에서 재미있다는 연락을 유난히 많이 받은 작품이다. 오랜만에 가족적이고 달달한 로맨스를 했다. 사실 (로맨스가)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일타강사라는 새로운 설정과 그 일타강사와 반찬가게 사장의 로맨스라는 게 신선했다. 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게 (시청자의 눈에) 보이지 않았나 싶다"라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이어 정경호는 "(작품을 시작할 때)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잘 안 하지 않겠나. 잘될 거라는 착각 속에 시작한다. ('일타스캔들'을) 시작할 때도 희망적이었고 기대도 많았다"라면서 "오랜만에 전도연 선배님의 밝은 연기 기대한 시청자도 많았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그렇다. '일타스캔들'은 전도연이 오랜만에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돌아온 작품이다. 정경호 역시 전도연의 복귀를 바랐던 1인이었다. 그는 "전도연 선배님과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히 내가 선택을 하고 안 하고의 부분이 아니었다. 제게도 좋은 기회였다"면서 "전도연 선배님과 같이 하는데 안 좋을 수가 있나? 영광스러운 작업이었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너무 좋았던 나머지, 전도연과 투샷인 촬영분을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며 한번씩 돌려보곤 했다는 정경호는 "동경해왔고 좋아했고, 존경하는 사람과 연기하는 자체가 영광된 순간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타 끝까지 너무 좋았다"라고 재차 강조했다.전도연과 '글로리'한 순간의 연속, 정경호는 왜 자신이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보며 연신 감격하는지 생각했다. 그는 "20년 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장르나 OTT 등 많은 변화가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해왔는데, 전도연 선배님을 보며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강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은 농담 삼아 '난 정체돼 있다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주는) 모두의 가슴에 기억되는 울림, 호흡이 큰 강점이다"라고 짚었다. 전도연을 보며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 보게 된 정경호는 "지난 10년 동안 예민하고 까칠한 역할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니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TV에서 최치열을 보는 순간 과거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슬의생'의) 김준환과 최치열의 예민함이 다르더라. 나름 단단해졌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했더라. 전도연 선배님도 30년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겠나. 제 지난 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도연 선배님 연기를 보며 감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나는 머리로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지만 억지로 표현할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전도연 선배님을 보면 어느 순간 행선이가 돼있었다. 많은 걸 배웠다"라도 전도연의 연기를 보며 깨닫게 된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전도연의 부지런한 모습도 정경호에게는 의외였다. 그는 "저도 현장에 30분 전에 나가는 스타일인데 선배님도 못지않게 일찍 오시고, 현장을 즐기신다. 저도 대본 외우는 데 자부심이 있는 편인데 선배님은 대본을 안 들고 계시더라"라면서 "그 정도 연차면 편하게 하실 줄 알았는데, 늘 카메라가 어렵다고 하고, 긴장하는 모습들이 신기했다"라고 전했다."판서 안 써져 짜증...루트 쓰는 법? 대본에 있었다"정경호의 실제 일타강사 같은 연기도 '일타스캔들'의 인기를 견인했던 관전 포인트였다. '저런 쌤 실제로 있을 것 같아'라는 평가를 받은 데는 정경호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습한 판서 연기도 주효했다. 그리고 정경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허술한 '하찮미'도.그는 "직업적으로는 최고지만 밥도 못 먹고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사람인데, 감독, 작가님과 얘기하며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이 뭘지 생각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하찮미'를 첨가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 했다. 대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나다움을 많이 살렸다"라고 최치열 연기의 포인트를 전했다.일타강사라는 직업 자체는 정경호에게 너무도 생소했다. "일타라는 단어도 몰랐고 이런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수학은 정말 0도 몰랐다"는 정경호는 일타강사의 강의를 보며 공부하고 준비했다. 그는 실제 수학 일타강사인 안가람 강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정경호는 "선생님 학원에 가서 수업도 들어보고, 수업 끝나고 얘기도 나줬다. 수학이 뭔지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극중 강의가 12문제 정도 나오는데 공식을 외웠다"라고 연기 준비 과정을 전했다.가장 까다로웠던 건 판서였다. 최치열과 달리 평소 잘 먹고 스트레스도 잘 받지 않는다는 그가 이 드라마를 하면서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이었다고. "정신병 걸릴 정도"였다고 표현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판서, 그는 "안 써지니 짜증이 났다. 계속 쓰며 연습했다. 칠판도 사서 집에서 연습하고, 안가람 선생님 퇴근하면 술 사주면서 집에서 연습했다. 어깨도 너무 아프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판서 속 디테일은 모두 준비된 것들이었다. 극중 수아(강나언 분)가 "이거 치열쌤 판서인데"라고 알아보는 장면이 있을 정도의, 최치열만의 시그니처가 있어야 했다. 정경호는 "리미트, 숫자 쓰는 법 등 처음부터 정해놓고 했다"고 밝혔다. 독특한 루트 쓰는 법에 대해서도 "루트 쓰는 방향도 대본에 있었다"라고 말해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줬다.일타강사를 연기하며 정경호는 이 직업이 연예인의 삶과도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 누군지 몰라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만의 삶이 있더라. 엄마들 카페 같은 세계도 그렇고. 연예인과 똑같더라. 늘 가십의 대상이다"라면서 "연예인 후기 찾아보듯 선생님들도 수업 끝나고 바로 후기를 본다. '말이 빨랐다' '어미가 내려갔는데 기분 안 좋은 일 있냐' 등. (일타강사는) 개인 시간이 없더라. 유일하게 하는 게 학생들 수학 문제 연구고, 돈이 쌓여도 돈 쓸 데 없고 휴가도 없다. 안가람 선생님에게 '뭐가 행복해?'라고 물의니 '강의할 때 학생들이 끄덕일 때'라고 하더라"라고 실제 일타강사의 삶에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도시락이요? 정말 맛있었죠!"섭식장애를 앓다가 행선의 도시락으로 입맛이 돌아온 최치열의 먹방은 참 쫄깃하다. 도시락의 맛은 실제로 어땠을까? 정경호는 "조리팀이 (요리를) 너무 잘한다. 청주 반찬가게 세트에서 실제로 조리를 하고 반찬도 진열했는데 늘 콩조림 같은 반찬을 싸왔다.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후기를 전했다.맛있는 밥만큼 현장에서 함께한 배우들, 살아있는 캐릭터들도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정경호는 "오의식과는 친구라 호흡은 말할 필요 없이 재미있었고, 신재하와는 '슬빵'에서 같이 했었기에, 귀여웠다"라고 인연이 있는 배우들과의 연기에 만족했다. 인상 깊었던 배우는 장영남. 정경호는 "강직하고 우직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면서 힘있게 연기하는 게 놀라웠다"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귀여웠다며 장영남의 반전 매력을 귀띔했다.극중 남행선의 딸이자 조카인 남해이를 연기한 노윤서를 보며 정경호는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어쩜 저리 연기를 잘하지 생각했다. 이제 겨우 세 작품째인데 어떻게 저렇게 다 알지? 나는 저 나이때 저렇게 못 했는데"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만 노윤서가 정말 기대된다. 정말 부러웠다. 노윤서에게도 '어쩜 그렇게 잘하냐'고 직접 얘기했다. 부정은 안 한다. 요즘 애들이 그렇더라"라며 웃었다.로맨틱코미디 장르인 '일타스캔들'에 로맨스와 스릴러가 주객전도 됐다는 반응이 방영 내내 나온 데 대한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 정경호 역시 비슷한 걸 느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행선이와 연애가 좀 짧지 않나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연애 하기 전까지가 재미있지, 하고 나면 재미 없다. 충분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좀 쉬려고요. 많이 먹고 운동도 하고"'일타스캔들'은 최치열의 성장기이자, 배우 정경호에게 깨달음이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보며 억지로 변화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고, 20년이라는 세월을 통해 비슷한 캐릭터에도 변주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달하 연기했기에 이미지 변신을 욕심낼 만도 하지만 그는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기로 했다. 정경호는 "변신이 갑작스럽게는 되지 않을 거다. 개인적으로 영화 '보스' 이후 쉼표를 갖고 싶다. 쉬지 않고 작품을 하면서 한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가진 것이 많고 단단해진 상태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지, 다짜고짜 쉬지 않고 하면 제자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흔 하나라는 나이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이지 않나. 지난 20년보다 지금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쉬는 동안에는 무얼 할 계획인지 묻자 "4월 말부터 많이 먹을 생각이다. 운동을 하루 두 시간 이상씩 할 거다. 그래봤자겠지만"이라며 웃었다.정경호의 말처럼 그의 연기 경력은 곧 20년이다. 정경호는 20년 연기 생활에 있어 후회만은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는 "엊그제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일타스캔들' 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잘할 수 있냐고 해도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이다"라고 말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많이, 최선을 다했다. 후회를 최대한 안 남기려 한다. 미련이 남기는 하겠지만"이라고 말했다.매 순간, 매 작품 최선을 다했다는 정경호는 소처럼 일하는 배우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연기한 그가 "열심히 잘했다"고 자평할 수 있는 건, 훌륭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버티고 있어서 좋은 작품을 만났다"라고 말이다.작품을 할 때마다 '재발견'이라는 얘기를 듣는 배우이기도 한 정경호는 이런 반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쉬지 않고 한 작품씩 열심히 하고 있다. 재발견이라는 말은 기분이 좋고, 더 좋은 모습,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도 생긴다"라고 말했다.연인인 소녀시대 최수영과 11년째 열애 중인 정경호, 그런데 '일타스캔들'의 성공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반응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오빠 답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가까운 사이이기에 서로의 연기에 대한 피드백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대신 정경호는 "남들 연기하는 걸 보고 얘기하는 건 좋아한다. 엊그제도 '바빌론'을 보며 밤새 얘기했다"고 전했다. 아버지인 정을영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경호는 "가족일수록 일에 대해 얘기를 안 하게 된다. 대신 칭찬은 서로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일타스캔들' 팀과 제주도 다녀와...빨리 회비 내세요!"현장에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정경호는 의외로 극 I의 INFJ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동료 배우, 제작진과의 앙상블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경호는 "얼마 전에 박성웅 형이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운 우리 경호'라고 해주셨는데, 남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고 크게 노력하지는 않지만"이라고 사랑스럽게 말했다. '일타스캔들' 역시 함께 작업한 이들이 있었기에, 정경호에게 좋은 현장으로 기억된다. 그는 "아등바등 노력을 하지 않았다. 감독님, 작가님이 놀이판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셨고 촬영 감독님도 너무나 편하게 해주셨다. 7개월 동안 판서 외에는 정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도 없이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라며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일타스캔들' 팀과 최근 제주도에 가 밤새 얘기했다는 그는 "회비 걷어야 하는데, 빨리빨리 입금해 달라"라고 말하며 웃었다.지나온 20년 중 어느 순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말할 정도로 후회를 싫어하는 배우 정경호, '일타스캔들'의 최치열 캐릭터도 최선을 다한 정경호를 만나 완성형이 됐다. 또 하나의 인생작을 만들어낸 정경호는 "20대때는 내멋에 해왔고, 군 전역 후 30대에 와서는 조금만 부진해도 이 일을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연기했다. 마흔이 돼서는 '기대가 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아직 한창이다"라고 바랐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tvN, 오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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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인과 하나도 안 닮았다 말하는 이보영에게 [인터뷰]
[TV리포트=박설이 기자]'마더' 이후 5년 만의 인터뷰다. 이보영이 JTBC '대행사'를 보내며 서울 압구정 모처에서 취재진과 만났다. 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주인공 고아인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그린 우아하게 처절한 오피스 드라마 '대행사'에서 이보영은 주인공 고아인을 연기했다. "부담 가질 필요 있나요? 안 되면 안 되는 거죠"종영 소감을 묻자 이보영은 "재미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오피스 드라마는 처음이고 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연기한 것도 처음이다. 소통이 잘되는 팀이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같이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기분이었다"라며 '대행사' 팀워크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행사'의 현장 분위기는 이보영의 밝은 텐션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정말 많은 배우들이 나오지 않나? 즐겁게 찍은 만큼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나와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대행사'를 향한 주변 반응도 오랜만에 특별했다. 이보영은 "데뷔한 지 오래되니 (작품을 해도) 반응을 잘 안 주는데, 지난주 친한 스크립터가 '언니 너무 재미있어, 과몰입 중이야'라면서 오랜만에 문자를 줬다"면서 "저는 드라마가 재미 없다. 일로 느껴진다. 대본을 보면 재미있는데 영상으로 보면 '왜 저렇게 했나' 부족한 부분만 보여서 과몰입이 잘 안 되는데 그 친구가 재미있게 봤다고, '언니 덕에 살고 있다'고 얘기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동시간대 전작 '재벌집 막내아들'의 큰 성공으로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전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부담 가질 필요가 없었다. 안 되면 안 되는 거고"라고 쿨하게 말했다. 다만 포스터는 부담스러웠다고. 이보영은 "감독님에게 '왜 포스터에 나를 혼자 세웠느냐'라고 얘기를 하긴 했다. (잘 안 되면) 책임 전가가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었다"라면서 "나이가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용서 되고 이해가 되는, '저 정도면 돼' 하는 시기는 지났더라.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기는 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여성이 주인공이 작품 많아진 것, 감사한 일이죠"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이보영은 '대행사'를 통해 '원톱 여성배우'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이보영은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는다. 그는 "(시청자는) 방송 끝나고 일주일이면 다 잊는다. 그냥 순간에 감사하고 '잘 나왔구나'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건 '다시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라고. 그는 "최근 들어 운이 좋았는지 좋은 사람과 좋은 작품을 해왔다. '마더'도, '마인'도. 작품을 할 때마다 '이렇게 즐겁게 찍는 게 마지막이지는 않을까' '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며 마음이 안 좋기도 하다. 다음에 또 이런 좋은 기회가 올까 싶어 서운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드라마,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약진에 대해서는 "너무 감사하다. 선배님들께서 길을 잘 닦아주셨다"라며 "나도 저 나이까지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더 잘해야겠다, 더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라고 기뻐했다.이보영이 연기한 고아인은 이보영 연기 인생 역대급 '쎈캐'다. 이보영은 '대행사'를 고아인의 성장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 그는 "혼자 잘나고, 늘 혼자 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캐릭터가 미워 보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고아인처럼 말하는 걸 시청자가 보면 등 긁어주는 느낌이지 않을까,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이 고아인이 잘되기를 응원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이보영은 '센 게 아니라 센 척하는' 고아인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에게 공감하고 짠한 마음을 가졌다. 그는 "고아인도 버티고 있고, 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버틸 거고. (연기하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아인과 자신의 싱크로율을 묻는 질문에는 "1도 없다. 적막한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약 먹고 술 먹고 혼자 자는 것도 싫고, 막말하는 사람도 못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닮은 점은 하나도 없다고.자신과는 전혀 다른 고아인을 연기하며 이보영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의외로 엄마와의 서사였다. 실제 두 아이의 엄마인 이보영은 고아인을 버린 엄마 서은자(김미경 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그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가서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낼까 고민했다. 상처를 극복하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데 도무지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다. 어떻게 딸을 버릴까"라면서 "그런데 엄마가 팔찌를 잡고 있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엄마가 너무 미웠다. 그런데 또 찍으면서 눈물은 엄청 났다"고 연기 비하인드를 전했다."하고 싶은 역할이라고 재미 없는 걸 할 수는 없잖아요"유독 작품에서 전문직 여성을 자주 연기했던 이보영, 사실은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망가지는 것, 밝은 것도 하고 싶은데 (내게서) 그런 게 잘 안 보이나 보다. 그렇게 사연이 많지 않은데"라고 말한 이보영은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어도 대본이 재미없는데 할 수는 없다. 확 꽂히는 대사나 씬이 있으면 그 작품을 택한다"고 자신만의 작품 선택 기준을 밝혔다. 대행사 역시 "재미있어서" 선택했다. 이보영은 "대본도 재미있고, 찍을 때도 너무 재미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못돼 보일까, 소리를 어디까지 질러야 할까. 처음 해보는 연기라서 너무 재미있었다"라고 고아인 캐릭터와 '대행사'에 함께하게 된 것에 만족했다. 차기작 역시 전문직에, 부모 복 없는 캐릭터라고 귀띔한 이보영은 "대본을 재미있게 봤다"며 작품 선택 이유를 밝히기도.극중 적대 관계였던 조성하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이보영은 "선배님이 악역처럼 나오시지만 악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위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악역처럼 보였으면 미웠을 것 같은데 귀엽게 보였다. 제가 선배님을 좋아해서 그런지. (고아인을) 약 올리고 가는 것도 재미있고 귀여웠다"라고 말했다.'대행사'는 오피스물인 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드라마였다. 그 가운데 이보영이 고아인 외에 탐 냈던 캐릭터는 해맑은 조은정(전혜진 분)이었다. 이보영은 "어디서든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던한 사람이 있어야 조직이 환해지지 않나. 엉뚱하고, 약간은 무뎌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밝은 에너지의 은정이가 예뻐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중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은정의 상황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이보영은 "저희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야 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그런다면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 하지만 일을 하러 나갈 것"이라며 "저희 엄마가 보면서 '저렇게 할머니가 다 봐주는데?'라며 서운해 하시더라. (투정 안 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이번 작품에는 유독 연극배우 출신이 많았다. 이보영은 TF팀 멤버 병규와 원희를 연기한 이창훈, 정운선의 연기가 특히 인상 싶었다. 이보영은 "연극배우 출신들이 많았는데, 다들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연기를 해서 재미있었다. '이렇게 하겠지'라는 계산에서 벗어난 연기였다"면서 "병수(이창훈 분)와 찍을 때 울컥울컥할 때가 많았는데, '상무님 승진 축하드립니다'라는 대사를 리허설을 하는데 너무 리얼해서 눈물이 확 올라오더라"라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이보영은 이창훈에게 "드라이하게 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면서 "날 것을 듣는 게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고 이창훈의 연기를 칭찬했다. 승진 소식을 듣는 원희(정운선 분)의 연기를 보면서도 같이 눈물이 날 뻔했다고."일 쉬게 됐을 때, 간절해지더라고요"한편 이보영은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대행사'에서 고아인이 과거를 회상했듯, 이보영도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기억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 정말 적성에 안 맞아서 도망치고 싶었고 혼나는 게 무서웠다. 열심히 준비해도 카메라 앞에 가면 얼굴 근육이 맘대로 안 움직이고, 연기가 겁났다"라면서 "그렇지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일을 되게 사랑하고, 연기가 재미있어졌다. 시청자들에 제가 만든 캐릭터를 사랑해줄 때 희열도 크고,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잘 버텼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과거와 달라진 자신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을 "견딘 게 아닌, 시간이 지나간 것"이라고 말하는 이보영은 "일을 쉬게 됐을 때, 일이 없어지니 간절해 지더라. 그 다음부터는 현장에서 누가 나를 찾아주는 게 감사하다. 현장에 갈 때 설레고 좋다. 현장에서 진짜 내가 되고,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는 게 감사하다"라며 지금의 배우 이보영이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전했다.청순한 첫사랑 역할만 들어와 고민이 깊었던 때도 있었다. 한때 밝은 캐릭터가 하고 싶어 잠시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적도의 남자'를 계기로 이보영은 깨달음을 얻었다. '적도의 남자'도 청순한 역할이었지만 이 역할은 청순한데 강단 있었다. 수동적이지 않았다. 행복하게 찍었다"라며 "'적도의 남자' 이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변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잘 맞는 옷은 분명 있다"라고 말했다.남편인 배우 지성은 이번 '대행사'를 어떻게 봤을까? 이보영은 "재미있다길라 '진짜 재밌어?' 했더니 '진짜 재미있어'라고 하더라"라고 반응을 전했다. '대행사' 엔딩 후 지성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보영은 "그러니까요. 처음에 그거 보고 어찌나 빵 터졌는지"라며 웃었다. 지성과는 서로 연기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이보영은 "가까운 사람이 (연기에 대해) 그런 말을 하면 화가 날 것 같다. 작품을 고르는 것도 터치하지 않는다"면서 "연애할 때는 (배우 지성이) 자극이 됐다. 오빠가 되게 열심히 연습하고 연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큰 자극을 받았지만 같이 살면서는, 잘되면 서로 좋은 것 아닌가. 같이 좋아한다"라고 말했다.함께 연기한 손나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재벌가 딸이자 광고대행사 상무인 강한나를 연기한 손나은, 연기 데뷔 10년이 넘은 중견배우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작품에서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보영은 손나은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보영은 "(손나은과의 연기는) 너무 좋았다. 잘했고, 열심히 했다. 한나와 싱크로율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인플루언서처럼 화려한 부분도 그렇고. 처음으로 롤이 큰 캐릭터를 맡아 부담이 컸을텐데 준비를 열심히 해왔다.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칭찬했다. 고아인과 강한나가 처음 만나는 씬, 강한나가 첫 출근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보영은 "그 씬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공을 들여 찍은 장면이다"라고 밝혔다.마지막으로 이보영은 고아인을 향한 애정어린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전했다. 이보영은 "(성공 같은) 저런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중요한 건 내 마음의 건강, 내 안이 바로서는 거다. 중요한 건 그런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성공과 인정) 그런 건 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돈시오패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돈에, 성공에 미쳐 자신을 잃어가던 '대행사'의 고아인이 많은 시청자의 응원을 받고, 성장하며 따스한 울림을 전한 건 캐릭터를 향한 배우의 애정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감사할 줄 아는 이보영의 진심이 있기에 가능했다. "사람들은 끝나고 일주일이면 잊어버려요"라면서도 자신의 드라마를 인생작으로 꼽아주는 팬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보영, 쿨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 따뜻한 고아인과 닮았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드라마하우스, 제이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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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TALK] 머리숱 빽빽한 PD가 만드는 탈모 예능 (인터뷰①)
<박설이의 막후TALK> 막후(幕後)의 사람들, 나오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MBN '모내기클럽', 웹예능 '운동부 둘이왔어요' 김성 PD[TV리포트=박설이 기자]"월화수목금토일 쉬는 날이 없어요."KBS에서 '1박2일' 팀에 제일 오래 있었던, 현 스페이스래빗 소속 김성PD는 힘들어 하면서도 미소를 띠었다.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는 사람의 '폼'이었다.예능을 만드는 스페이스래빗은 '돌싱글즈' '고딩엄빠'으로 성공을 거두며 MBN 예능의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야심차게 선보이는 국내 최초 탈모 버라이어티 '모내기클럽'을 맡은 김성 PD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20년부터 MBN에서 '친한 예능' '오래살고볼일' '전국방방쿡쿡' 등을 만든 김성PD. 웹예능 '운동부 둘이왔어요'와 '모내기 클럽'을 동시에 만들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상암에서 만났다."KBS, 꿈에 그리던 직장이었지만..."방송가에서 '공무원'으로 통하는 'KBS 소속'이라는 신분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터. 김성 PD는 "안정적이고 꿈에 그리던 직장이었지만, 새로운 숏폼, 플랫폼 등에 대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며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를 밝혔다. MBN의 예능 제작 전문 자회사인 스페이스래빗에서 KBS 출신 PD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그는 "KBS 있을 때는 부서별로 워낙 바빠서 서로 볼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보니 더 끈끈해진 것 같다"며 만족했다.물론 KBS를 떠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가장 아쉬운 건 KBS의 '원스톱 시스템'이라는 김PD는 "있을 땐 몰랐는데 후반 작업 시스템이 정말 위대하다"라고 말했다. 자막, 색 보정 등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모두 KBS 직원들이 맡아 했기에 촌각을 다투는 전쟁 같은 편집 과정도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었다. 그는 "한번에 되는 시스템이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는데, 나와서야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면서 "나와보니 분야별로 다 세분화돼 있어 하나하나 이메일로 소통을 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으로 일할 때가 많아져 디테일을 얘기하기 쉽지 않더라"라고 아쉬워했다. KBS 등 지상파가 갖춘 고급 인력 인프라, 최상급의 정보력은 재직 PD들에게 가장 큰 메리트일 수 있다. 오랜 시간 방송을 만들며 구축한 시스템을 떠나 만나게 된 건 외주와 조율의 연속. 음향, 음악, 자막, 종편 등 외주사가 다 다르고 최종 결정권을 가진 PD 입장에서는 이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피로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KBS를 떠나며 남았던 일말의 아쉬움을 보듬어주는 건 함께했던 동료들이다. 김성PD는 KBS에서 함께 일했던, 지금은 KBS를 떠나 다른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기 PD들과 지금도 자주 만나며 응원을 주고받는다. 그는 "다 잘돼서 너무 좋다. 힘든 바깥으로 나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해서 잘되고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라고 말했다. "탈모를 예능으로 만들어도 될까?"대학 시절 영화 연출을 전공한 김성 PD는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보고 동명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전쟁 사진을 본 사람은 '나는 저 전쟁에 죄책감은 없어. 안쓰럽지만 남의 고통일 뿐이야'라고 한다. 어쩌면 저 전쟁을 이미지화하는 것조차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든 영화였다"고 자신의 첫 연출작을 떠올렸다. 김PD가 습작에 대해 처음 털어놓은 이유는 그가 만들고 있는 예능 '모내기클럽' 때문이다.머리숱이 빽빽해 탈모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는 김성 PD가 '모내기클럽' 연출 제안을 받은 건 지난해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고 생각해 고사했지만 결국 김 PD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탈모로 예능을 만든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면서도 "탈모를 감추고, 음지로 들어가고, 친한 친구에게조차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극복한 이들의 희망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다른 사람의 외모를 지적하는 것이 결례라는 인식은 확산됐지만 유독 아시아권에서, 특히 한국에서 탈모는 여전히 놀림의 대상이다. '대머리' 혹은 '민머리'라며 개그의 소재로도 자주 이용한다. 벨기에에서 온 방송인 줄리안은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 이마를 드러냈다가 주변의 놀림과 걱정을 겪고는 결국 모발 이식 시술을 받았다. 탈모를 향한 한국인의 '시선'에 굴복한 셈이다. 줄리안의 사례가 연출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김 PD는 "탈모 고민을 가진 인구가 천만인데, 많은 이들이 타인의 시선 때문에 몰래 찾아보다 잘못된 정보를 접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정보를 얻고 진료를 받으려면 많은 돈이 들지 않나. 양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명수, 탈모 극복 위해 안 해본 것 없는 사람"일찍이 '탈밍아웃'을 한 연예계 대표 '탈모인' 박명수는 '모내기클럽' MC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김PD는 "기획 의도를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다 얘기하시더라. 탈모 극복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분"이라며 박명수를 향한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많은 방송인들이 탈모인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탈밍아웃'을 결심하고 있다. MC인 박명수와 김광규 외에도 김수용, 박성광, 줄리안, 고은아까지 '모내기클럽'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자 게스트로 나서줬다.탈모에 대한 정보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우는 게 가능한지도 고민거리였다. 김성 PD는 이들의 '이야기'로 채워 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정보 제공이나 궁금증 해결에는 한계가 있을 거다. 탈모 고민을 가진 회원(방청객) 분들의 인간적인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최근 촬영된 여성 탈모인 편에는 고은아, 김미려, 이은형, 배윤정이 출연해 출산 후 탈모, 넓은 이마 등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고.김 PD는 "'모내기클럽'에 출연하는 분들은 극복기를 공유하거나, 탈모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과정을 얘기해 준다. 이들이 지나온 길을 보면서 좋은 정보를 얻어가길 바란다. 시청자가 정보를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MBN, 김성 PD[막후TALK] 인터뷰②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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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TALK] 현주엽-김태균이 PPL에 진심이 이유 (인터뷰②)
[막후TALK] 인터뷰①에 이어..[TV리포트=박설이 기자]TV 예능과 웹예능을 동시에 제작하고 있는 연출자가 몇이나 될까? 김성PD가 그걸 해내고 있다. 스페이스래빗의 유일한 웹예능인 '운동부 둘이 왔어요'는 구독자 수 40만을 육박하며 순항 중이다.시청층이 대체로 높은 MBN, 김성PD는 젊은 시청층을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어 웹예능 '운동부 둘이왔어요'를 시작했다. 전현직 운동선수들이 밥과 술을 곁들여 얘기를 나누는 이 예능은 편당 조회수 100만 이상을 찍은 회차가 잔뜩이다. 김 PD는 전작 '전국방방쿡쿡'을 통해 20인분 먹방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던 스포츠 스타 출신 두 미식가 현주엽과 김태균을 메인 출연자로 택했다. 그는 "'누가 먹으면 좋을까?' 하다가 두 분의 케미가 떠올랐고, 딱 10개만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기존 30~50대 남성이 주 시청자였다면, 최근 숏츠를 시작하면서 20대와 여성 시청층도 늘고 있는 추세다.김 PD에 있어 TV보다 훨씬 자유로운 웹예능 환경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는 "웹예능에서는 출연자가 좀 더 솔직할 수 있고, 분량에 제한도 없다"라고 차이를 전했다. 70, 80분을 채워야 하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15분을 내도 되고, 25분을 내도 되는 게 웹예능이라 분량 압박이 없다는 설명. 게다가 현장 스태프도 단 9명으로, 기본이 수십 명인 TV 방송보다 제작 규모 가볍다. 작가 역할도 김성 PD가 직접 맡아 하고 있다.PPL 열심히 하는 출연자를 만난다는 것그가 꼽은 웹예능 최고의 장점은 단연 PPL이다. 김PD는 "최대한 요청 사항을 받아들이려 한다. 출연자들도 PPL에 열려있고, 또 잘 소화한다"라며 "첫 PPL을 받고는 '돈 받고 먹으러 가는 건 안 봐'라는 반응이 있을까 봐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TV에서는 광고라는 게 티가 나면 딱 거부감이 생기지 않나.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광고 열심히 하고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라. 숙제 열심히 해라'라고 말해 주시더라. 웹예능은 봐주시는 분들이 '시청자'가 아닌 '팬'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너희들이 PPL을 해야 오래 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정말 신기하다"라고 구독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실시간 소통이 된다는 점도 TV 예능과 다르다. 포털사이트 댓글 기능이 없어져 일반 시청자의 반응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튜브 댓글은 가장 빠르게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고 반응을 캐치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그는 "댓글로 PPL 얘기를 하면서 응원해 주시니 출연자들도 더 신이 나고, PPL 들어오면 더 열심히 한다. 불편하지 않게 PPL을 녹이는 포인트를 찾아가는 묘미도 있다"고 말했다. 먹고 마시는 예능이다보니 주류, 음료, 요식업 프랜차이즈 등 기업의 PPL이 쏟아지고 있다고 자랑한 김PD는 "신발 PPL이 들어왔는데 현주엽씨 발 사이즈에 맞는 게 없어 포기한 게 있었다. 아쉬웠다"고 비하인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저작권 복잡해 음악을 뺐더니...웹예능을 만들기 위해 유튜브에 영상 업로드하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는 김PD가 봉착한 어려움은 의외로 음악이었다. 음악 사용에 있어 저작권 해결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했기에 아예 음악을 빼버렸다. 그는 "음악을 뺐더니 오히려 출연자들의 말이 잘 들리더라"라고 말했다. 긴 호흡의 TV 예능을 만들며 음악을 강박적으로 많이 넣어왔다는 것을 깨닫고 음악을 빼니 훨씬 '유튜브 감성'에 근접해졌고, 구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초대해 밥을 먹이고 싶은 운동선수를 묻자 김PD는 주저 없이 "손흥민"을 외쳤다. 그는 "현역 선수를 모시는 건 사실 조심스럽기는 하다. 아무리 좋은 걸 대접한다고 해도 식단 관리도 해야 하고 경기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니까"라며 "쉴 때 나와주셨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손흥민 씨를 모시는 게 꿈이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더불어 김성 PD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향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인기 종목, 혹은 유명하지 않은 선수가 출연하면 조회수에는 분명 영향이 있지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자기 분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도 내 목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네 형이랑 술 먹으면서 보는 것 같다'라는 댓글이 정말 좋았다. 정형화된 게 아닌,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영화학도가 예능PD가 되기로 한 이유본인이 조심스러운 편이라고 말하는 김성 PD, 방송사가 '모내기클럽'의 연출을 그에게 맡기게 된 건 그 조심스러운 성향이 '탈모'라는 독한 소재를 세심하게 보듬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학도였던 그가 예능PD를 꿈꾸게 된 이유도 그의 조심스럽고 세심한 성향과 결을 같이한다.군 제대 후 UCC 공모전에 참가, 유럽으로 향했던 김성PD는 "유럽 사람들에게 꿈을 물어봤더니 직업이나 성취 같은 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 '나의 행복을 찾는 일'을 얘기하더라. 그게 살아있는 이야기였다"라고 떠올렸다. 영화처럼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한 계기였다. 그는 "예능이라면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무한도전'에서 기후변화 얘기를 컨테이너 두 개를 이용해 재미있게 풀지 않았나. 책으로 봤으면 관심 없었을 어려운 얘기를 개그맨들이 친근하게 풀어내는 걸 보고 '이런 힘이 있구나' 했다"고 말했다. 김PD는 '모내기클럽'도 숨은 탈모인들에게 용기라는 메시지를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그런데 그가 진짜 만들고 싶은 예능의 목표점은 다른 데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성 PD는 "예능은 교양, 드라마의 포맷을 다 흡수해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작 예능의 원류인 정통 코미디가 설 자리가 없다"면서 "코미디언들을 만날 때마다 천재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들과 무엇이든 함께 해보고 싶다"고 바랐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스페이스래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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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TALK] 유재석과 신사옥에서, ’비밀보장‘ 400회 (인터뷰②)
[막후TALK] 인터뷰①에 이어..[TV리포트=박설이 기자] 2023년 2월 15일 수요일 400회를 맞는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감회는 남다를 것 같았지만 의외로 무덤덤했다. 그들에겐 몇백 회가 되든 '비밀보장'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고, 열심히 일하는 많은 날들 중 하루다.박: 400회 소감이 궁금해요.김: 하다 보니 400회가 돼 있어요. 진한 감회를 돌아보기에는 너무 바빠요.조: 맞아요. 우린 너무 바빠요. 하다 보니 100회, 하다 보니 2주년, 하다 보니 300회, 하다 보니예요.김: 듣는 분들은 루틴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회의를 정말 많이 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거거든요.박: 고민을 들어준다는 하나의 포맷을 계속 가져가니까요.김: 맞아요. 중심을 버리는 게 악수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깨알 같은 재미를 넣고 디테일한 차이를 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죠.조: 작가인 저희가 땡땡이 분들과 소통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정말 커요. 김: '비밀보장'은 틀면 나오는 게 아니라 찾아서 들어야 하는 방송이고요. 때로는 재미가 덜한 회차도 있었을 텐데 땡땡이들은 의리로 지금까지 같이 와주셨고,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계속 만들고 싶어요.사연을 받고,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해주는 방송은 많다. '비밀보장'이 가진 고민 해결이라는 콘셉트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 흔한 포맷을 살리는 건 송은이와 김숙, 그리고 전화 연결이다.박: 고민 들어주는 방송은 많죠?조: 사실 평범한 포맷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코너죠. 그걸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죠. 똑같은 고민 상담이라도 송은이와 김숙이 풀어낸다는 게 특별한 거고요.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각자 솔루션을 준다는 것이요. 송은이 김숙이 해결 못하는 건 전화 연결로 해결하고요.김: 남의 전화를 엿듣는 느낌도 들잖아요? 방송이 아닌 것처럼, 거친 말도 하면서 진짜 사적으로 통화하듯 얘기를 나누니까요.박: 저 개인적으로는 담배녀(김숙의 친구이자 흡연자, 전화 연결 단골 게스트)의 팬이에요. 그때만 해도 방송에서 대놓고 흡연 얘기를 하는 건 흔치 않았거든요.김: 너무 재미있었죠? 일반인인데 너무 재미있는 분이에요. 그런 것들을 보면 초창기에 '비밀보장'이 확실히 앞서갔던 것 같아요. 흡연 얘기나 성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이 물론 있기는 했지만 재미 없게 다뤘죠, 대부분. 각 잡고 진지하게. 저희가 B급 감성으로 잘 풀었던 것 같아요.박: 전화 연결하면 출연료는 받나요?조: 대표님이 전화 연결한 목록을 한번씩 뽑아서 다 출연료를 챙겨 드리고 있어요. 전화 연결한 사람도 출연료를 지급한다는 방침이에요.김: '비밀보장'은 전화 연결을 하는 게 방송의 핵심이잖아요? 라디오 출연자처럼 출연료를, 많지는 않지만 드리는 거죠.박: 스튜디오 오시면 더 많이 드리겠네요?조: 그렇지만 스튜디오에 잘 안 오셔요. 돈 때문인가? 하하김: 오히려 게스트가 많이 나오면 평범해지는 것 같아서 게스트 모시는 걸 지양하려고 해요.김종선 작가의 말처럼 '비밀보장'에는 게스트가 거의 없다. 그런데 15일, 400회를 맞아 특별히 유재석을 초대했다. 유재석은 '비밀보장' 초창기 홍보에 기여도가 상당한 인물. 여러 차례 전화 연결 혹은 음성 녹음으로 땡땡이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송은이가 유재석의 웹예능 '핑계고'에 출연한 보답으로 '비밀보장' 품앗이 출연이 성사됐다. '비밀보장' 3회에서 유재석의 첫 음성 메시지 '유재석의 염려'가 공개된 지 8년 만이다.박: 유재석 씨 오시는 날은 전사가 움직이겠어요.김: 그날은 팬싸를 아예 준비할 거고요. 그걸 찍을 거예요. 조: 언니가 '유재석 씨 오면 옆방에서 전화 받는 걸로 하면 어떨까?' 하더라고요. 아니 유재석 씨가 왔는데...굳이?김: 김수용 씨, 담배녀, 황보, 산다라박, 김영철...스튜디오에 왔던 게스트가 10명이 채 안 될 거예요. 근데 아무래도 게스트가 오면, 불시에 전화해서 갑자기 화장실에서 받는다든가 하는 돌발 상황, 날것의 느낌이 좀 덜한 것 같아요. 그러나 유재석은 재미있을 거예요. 하하!박: 유재석 활용 방안, 얼마나 준비됐나요?조: 유재석을 위한 특별한 코너를 만들지는 않았어요. 유난 떨지는 않고요. 다만 유재석 씨가 모든 코너를 함께하는 '유재석의 비밀보장'으로 하려고요. 하하!김: 평소 하던 거 한다고 해 놓고, 우리가 했던 모든 코너를 '자 다음 코너, 다음 코너, 다음 코너' 모든 코너를 다 함께 하겠다, 착즙을 하겠다는 거죠. 유튜브도 한 3회분?조: 3회분이 뭔가요? 5회분은 나가야죠.김: 평소 하던 거 한다고 안심 시키고 뽕 뽑는 특집이에요.'비밀보장'은 김종선 조혜정 작가가 만들어 온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과 달랐다. 초창기 '비밀보장'은 사연만 있고 음악과 광고가 없었다. 긴 시간을 사연만으로 채우는 게 버겁지는 않을까 고민했고, 해결책을 찾았다. 그 키는 김숙이 내놨다.박: 초창기 '유재석의 염려' '이영자의 넋두리' 같은 음원이 반향이 컸어요.조: 라디오는 사연 듣고 음악 듣고, 광고 듣는 타이밍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 유행하던 정치 팟캐스트를 들어보니 계속 얘기만 하는 거예요. 저작권 때문에 음악을 못 트니까요. 음악 대신 뭐라도 틀어야겠는데...고민하다가 녹음해온 걸 틀게 된 거죠. 방송국에서 누구 만나면 "안부 인사 해줘" 하면서 녹음을 따기 시작한 거예요.김: 거기에 제목을 재치 있게 달았던 게 재미를 줬죠. 그것도 우리끼리 밥 먹고 깔깔 대다가 툭툭 나온 거였어요. 누구 아이디어인지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영자 언니 목소리 녹음해온 건 숙이가 먼저 했었죠. 박: 결정적인 아이디어였네요.조: 큰 줄기를 은이 언니가 만든다면, 거기에 하나씩 강력한 양념을 쳐주는 건 숙이 언니죠.김: 그런 다음에 "광고도 넣자" 하다가 지인들 중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떠올렸어요. "왜 그 양꼬치집 하는 매니저 광고 녹음해서 달라고 해봐"라고 해서 음원을 받아 무료로 틀어줬어요. 초기 특혜죠. 이걸 다른 광고주가 들으면 광고가 들어오겠지 하면서요. "저희는 아직은 광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만들어서 보내라고 했어요" 이렇게.'비밀보장'은 줄곧 팟캐스트 상위권을 지켜온 인기 방송이다. 지난해에는 애플이 선정한 팟캐스트 '2022년 우리가 가장 사랑한 프로그램' 코미디 부문, '2022년 가장 많이 팔로우된 프로그램' 코미디 부문에 선정되며 저력을 증명했다.박: 8년 동안 팟캐스트 순위 상위권을 쭉 지켜온 비결이 있다면요?김: 다들 자기 포지션에서, 한 명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같이 열심히 달려왔거든요. 전 제 자리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대충 한 적이 없어요. 저뿐 아니고 다들 그래요. 은이는 "가서 좀 쉬라니까"라고 말을 해도 쉼 없이 계속 엔진을 돌려주고, 혜정이는 혜정이대로, 제가 "더 재미있는 거 없을까?"라고 하면 끊임없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고요.조: 그런 거 아닐까요? 되게 소소하게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게임으로 뭔가를 키우는 느낌? 같이 자라나는 느낌이요. 신사옥까지 오면서 땡땡이들과 쌓인 유대감, 그리고 '찾아서 듣는 우리만의 이야기'라는 점이요.김: 땡땡이들이 다른 방송보다 우리를 더 가깝게 느껴주는 게, 매체에서 하는 것처럼 너무 본격적이지도 않고, 나오는 사연은 내 고민 같고, 수다를 떨 듯 얘기해주고, 거기에 감정적으로 동화되고, 의리와 유대감도 생기는 것이죠.박: 주 청취자 층은요?김: 20대에 듣기 시작한 분들이 30대가 되고, 새로 듣기 시작하는 20대도 있고요. 20~40대 고루 있어요.조: 송은이 김숙 씨를 좋아하는 나이대죠.'비밀보장'의 슬로건 '사고무고', 사소한 고민부터 무거운 고민까지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고민 해결 방송이라는 의미다. '비밀보장'은 땡땡이들이 보내온 사연을 받고, 그것을 모아 분류하고 선정해 최종적으로 소개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과정의 연속이다.박: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연 있으세요?조: 최근인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너무 힘들다는 사연이 왔어요. 보통은 저희가 너무 진지한 사연은 잘 안 하기는 해요. 기본이 예능이니까요. 그런데 그 사연은 많이 안타까웠어요. 누구와 전화 연결을 하면 좋을까 얘기를 해보다가 대표님이 "우리가 해결하기보다 땡땡이들에게 답을 받아 보면 어때?"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땡땡이들에게 부탁을 드렸죠.박: 두 분이 엄청 우셨던 걸로 기억해요.조: 맞아요. 사실 숙 이사님은 잘 안 우시는 분인데...김: '땡땡이가 땡땡이에게'라는 말도 이때 처음 썼어요.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박: 재미있던 일은요?김: 저희가 운동회를 했었어요. 되게 오래 전에. 티켓팅하듯 했는데 순식간에 100명 선착순 마감이 됐고요. 여기에 자원봉사 해주실 분을 모집했는데요. 엄청 좋은 학교 나온 성악가가 '갯바위'를 부르는 기묘한 코미디도 펼쳐졌고요. 의료봉사 오신 분도 내로라하는 학교 나온 의사였고, 유단자에 줄넘기 능력자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대단한 스펙을 가진 분들이 봉사를 하시겠다고 지원을 하셨거든요. 운동회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요. 송은이 대 김숙 두 팀으로 나눠서 머리에 뭘 뒤집어 쓰고, 줄다리기 하고, 흙바닥에서 구르고. 정신없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근 몇 년 중 제일 재미있게 놀았었어요.조: 저희가 그런 이벤트를 정말 많이 기획했었거든요. 근데 코로나가 터지고 그게 딱 끊겼죠. 2020년 비보쇼도 결국 대면 공연을 취소해야 했어요. 김: B급 감성을 공연에도 많이 섞으려고 하거든요. 멋있기만 한 거 말고. 유니크한 비보쇼를 기획했죠. 올해 안에 비보쇼를 다시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그간 수많은 스타,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 땡땡이들이 송은이, 김숙과 전화 연결을 통해 땡땡이들의 고민을 들어줬다. 앞으로 전화 연결을 했으면 하는 스타를 물었다. 두 작가의 픽은 김혜수와 송혜교.박: '비밀보장'에서 전화 연결하고 싶은 스타가 있나요?김: 저는 김혜수?조: 전 개인적으로 송혜교?김, 조 : "혜, 혜, 혜교야!"('비밀보장' 329회 참조)조: 지금 타이밍이 참 좋은데 말이에요.'비밀보장' 400회를 맞는 2023년 1월 빌려 쓰던 3층 짜리 상암동 빌라에서 비보만의 단독 신사옥으로 이사를 한 비보 식구들. 직접 둘러본 사옥, 멋진 7층 짜리 신축 건물 안은 사무실, 스튜디오, 편집실, 회의실, 탕비실 및 휴게실, 미래전략실(대표, 이사실)까지 속속들이 알차게 채워져 있다.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는 사이즈와 모던하고 깨끗한 디자인이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박: 신사옥이요, 얇다고 놀림 받은 것 치고는 으리으리해요.조: 모서리를 보셨어야 되는데...정면만 커요. 그럼에도 예전보다는 훨씬 좋고요.김: 예전 사무실은 가정집을 개조한 거였어요. 부엌에 모이면 오손도손 얘기도 하고 했는데, 지금 사옥은 누가 출근 했는지가 안 보여서 좀 섭섭한 건 있죠.조: 누가 웃으면 "왜 웃었어?" 그러면서 참견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져서 아쉬워요.'비밀보장'을 만들어오며 '나는 급스타다' '영수증' '밥블레스유' '쇼핑왕 누이' '판벌려' 등 비보는 꽤나 많은 콘텐츠들을 만들어 선보여왔다. 지금은 제작하지 않는 프로그램들이다. 두 작가는 아픈 손가락으로 '영수증'을 꼽았다.박: 비보가 만들었던 프로그램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아픈 손가락도 좋고요.조: 영수증이 제일 아픈 손가락이죠. 제일 재미있었고, 또 아쉽기도 해요.다. 제일 재미있었고 또 아쉽기도 하다.김: 생겼다 사라지는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그런데 '영수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구성이고 흐름이었어요. 어느 시대에든 조금씩 바꿔서 해나갈 수 있는 포맷이고요. 남의 사생활을 영수증을 통해 엿보는 재미도 있었죠. 요즘 경제 상황이 많이 안 좋잖아요? 지금 다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도 해요. '밥블레스유'도 다시 해보면 좋겠고요.비보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며 성장 과정을 같이 걸어온 두 작가는 아직도 비보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다. 본인들 말대로 워커홀릭이고, 이 일을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 비보를 통해 만들고 싶은 이야기도 여전히 많다.박: 앞으로 비보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으세요?조: 옛날 느낌의 시트콤을 하고 싶어요. 지금 만들고 있는 '팬츠 CEO'도 작은 시트콤인 셈이죠. 단점이라면 우리가 출연해야 한다는 것? 요즘 시트콤이 없잖아요. 옛날 느낌의 시트콤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장항준 감독님도 계시고 대표님 숙이사님도 개그 연기를 하시는 분이고요. 김 : 저희가 사실 하고 싶었던 아이템이 많았는데, 자본 같은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만들지 못한 것들이 많았어요. 저희 아이디어가 다른 방송사에서 먼저 제작이 돼서 안타까웠던 적도 많고요. 조: 코로나가 딱 터져서 2020년 열 예정이던 '비보쇼'를 취소했었는데, 그때 송은이 김숙 두 분이 객석에 땡땡이들의 이름을 붙이자고 강력하게 원하셨거든요. 그런 포맷의 언택트 공연은 우리가 시작이었죠. 이후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게 많이 나왔었는데, 뿌듯하더라고요.'비밀보장'을 듣는 청취자들은 송은이 김숙의 팬이기도 하지만, '비밀보장'을 함께 만드는 제작진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진행자와 제작진, 그리고 청취자가 삼위일체인 것이 '비밀보장'의 장점, 강점이다. 땡땡이들에 대한 마음 김종선, 조혜정 작가의 마음은 그래서 남다르다.박: 8년이라는 세월, 400회까지 들어준 땡땡이들에게, 또 송은이 대표님에게 한마디 한다면?조 : 틀면 나오는 게 아닌, 찾아 들어야 하는데도 오랫동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놓친 부분들도 찾아서 리마인드 해주시면서 열심히 들어주시는 땡땡이들에게 늘 고마워요. 저희 프로그램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같이 가고 있다는 유대가 크거든요. 밖에서 "땡땡이예요" 얘기 들으면 "제가 고민녀 작가예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예요. 앞으로도 비보의 가족처럼 있어 주시길 바랍니다.김 : 은이야, 가끔 우리끼리 밥이라도 먹자.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해먹자. 가끔 네가 "비밀보장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재미없지 않니?"라고 고민을 하는데, 재미의 관점은 달라지겠지, 나이가 들면. 하지만 80살까지 해도 돼. '전국노래자랑'처럼 하면 되지. 그런 것도 하나쯤 있어도 돼. '비밀보장' 80살까지 하자.대표부터 막내까지 모두, 그리고 제작진과 팬이 함께 한다는 것, 비보가 지켜온 가장 큰 가치이자 원칙이다. 그 근저에는 회사를, 그리고 직원과 팬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대표' 송은이가, 스태프들 이름은 모르지만 직원이 히피펌을 한 건 귀신같이 알아보는 은은하게 세심한 '이사' 김숙이 있기에 가능했다. 유익하진 않아도 무해한 것을 만들고자 하며 매주 수요일 오후 땡땡이들을 찾아온 비보 식구들의 고집, 급변하는 방송가에서 '장인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명이 되길 바란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컨텐츠랩비보,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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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TALK] 송은이가 대표인 회사의 정직원이 된다는 것 (인터뷰①)
<박설이의 막후TALK> 막후(幕後)의 사람들, 나오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컨텐츠랩비보 김종선, 조혜정 작가[TV리포트=박설이 기자]'땡땡이', 옷에 있는 물방울 무늬가 아니라,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을 듣는 청취자 애칭이다. '김땡땡' '박땡땡'이라며 사연을 보내준 청취자의 익명을 보장한 데서 유래했다.코미디언 송은이와 김숙이 일이 없던 시절, 지인의 사무실 한 켠에 마이크 하나 두고 시작한 '비밀보장'이 400회까지 왔다. 소소하게 출발한 '비밀보장'을 시작으로 우상향한 컨텐츠랩비보(이하 비보)는 방송의 중심지인 서울 상암동, DMC역에서 걸어서 5분 밖에 안 걸리는 초역세권에 (대출은 꼈지만) 신사옥을 올리고 2023년을 힘차게 시작했다.일하고 싶은 회사 비보, 여기엔 CEO인 송은이와 이사직을 맡고 있는 김숙 말고도 2명의 창립 멤버가 더 있다. 업계 베테랑 김종선(a.k.a 노작가, 송은이 대표 절친), 조혜정(a.k.a 고민녀, 조부장) 작가다. 2015년 4월 6일 '비밀보장' 첫 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다.'비밀보장' 400회 공개를 방송을 앞둔 2월 어느 날, 상암동 비보 신사옥 인근 카페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송은이가 수장인 비보의 최장수 직원이기도 한 두 사람은 직장 동료라기보다는 친자매 같았다. 투닥거리며 상대방을 디스하면서도 서로를 매우 잘 아는 사람 사이 나오는 '가족 바이브'가 가득한 사이였다. 마치 자매처럼.박: 작가 경력이 얼마나 되시나요?김: 1997년에 시작했어요. SBS에서는 '멋진 만남' '결혼할까요' 같은 거 했고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조: 저는 2002년이요. 진짜 어릴 때 시작했어요.김: 회사에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저를 할머니 취급해요.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이곳에서 일하는 작가들 모두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계에서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관행이다.박: 비보 사무실에는 매일 출근하세요?조: 매일 와요.박: 방송작가들 프리랜서로 일하는 거 아닌가요?김: 저희는 비보의 정직원이에요. 다른 작가들도 다 정직원이고요. 4대보험 다 되고.박: 방송작가로서 최고의 복지 같은데요?조: 저희는 원래 밖에서 일하는 작가였잖아요. 저는 '배성재의 텐'도 오랫동안 하고 있고요. 그렇게 바깥 일을 하면서 비보 일을 같이 하다가 정직원으로 해주신 거예요. 다른 방송작가는 기본이 다 프리랜서거든요.김: 저희가 시작을 같이 한 멤버인데, 이후에 정직원으로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게 되고, 저희 포지션이 애매해졌던 거죠. 저희 위치를 제대로 정해주고자 했던 거죠. 너무 고마운 부분이에요.비보에서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은 '비밀보장'을 비롯해 비보TV 유튜브 채널, 셀럽파이브 채널, 신봉선TV 등에 올라가는 콘텐츠다. 최근에는 인기 팟캐스트 '씨네마운틴'의 시즌2가 종영했다. 아이템 회의하고, 대본 쓰고, 찍고, 편집하고, 자막 넣고, 종편하고, 릴리즈하고. 끊임없이 영상을 만들고, 또 만들 계획을 세운다. 박 : 비보에서 방송작가의 역할은 뭔가요?김: 보통 TV 예능을 하면 한 프로그램에 7~8명이 붙어요. 이들이 그 안에서 복합적으로 움직이거든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작가들이 여러 프로그램을 위해 멀티 플레이어로 일을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당 기본 2명 정도씩 담당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다 아우르고 있어야 하죠.조: 섭외, 구성, 아이디어 회의, 편집 조율까지 작가들이 다 참여해요. 김: 가끔 출연도 하고요.박: 쉬는 날이 있으세요? 김: 저희 둘은 약간 워커홀릭이에요.조: 하다 보니 워커홀릭이죠. 사실 방송작가의 일이라는 게, 딱 회사에서 끝낸다고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만 일할 수도 없고요.김: 당연히 짬 내서 놀기도 해요. 딱딱한 일이 아니잖아요. 깔깔 대며 일을 하니까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러면서 풀리기도 하죠.송은이, 김숙, 김종선 작가, 조혜정 작가는 회사에서 '연장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송은이 대표에 의하면 딸뻘 직원도 있다고. 두 작가는 MZ세대 직원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박: 요즘 회사 내에서 MZ세대 얘기 많이 하잖아요?김: 워라밸을 신경 써줘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처럼 일 하라고 강요할 수 없죠. 우리는 일하는 게 오래 전부터 습관이 된 거니까요.조: 주말에 급하게 문자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문자 보내면 안 되고, 닦달하면 안 된다"라고 하지만 급할 때 보내기도 합니다. 김: 이 친구가 저희 회사의 꼰대 캐릭터예요.조: 저는 진짜 꼰대예요.ㅠㅠ김: 저는 애들 눈치 봐요. 하지만 직종 특성상 주말에 연락할 일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긴 해요.조: 저희 후배 작가들의 경우 방송일이 이렇다는 것을 대체로 알고 입사해서 그런지 고맙게도 다 받아주고 있어요.두 사람은 인연이 길고, 깊다. 오랫동안 라디오 작가로 활동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긴 세월을 해쳐오며 끈끈해졌고, 든든한 아군이자 안정이 됐다. 박: 두 분은 팀이신가요?조: 저희는 항상 세트였어요. 제가 올라가려고 하면, 언니가 항상 옆에 있더라고요. 하하. 비보에도 언니가 있고. 근데 저는 2번이 좋아요. 안정적이잖아요. 제가 1번인 것보다는.김: '배텐'에선 메인작가잖아.조: 메인 되기 전까지는 계속 언니랑 같이 일을 했죠, 2번으로.김: 송은이 씨 라디오를 같이 하면서 둘이 인연을 맺었거든요. 은이랑 제가 "우리가 70이 됐을 때 네가 60이어도 너는 막내야"라고 해요. 하하.조: 진심이에요. 저는 이 위치가 좋아요. 계속 일을 같이 하는 게 너무 좋아요.김종선 작가는 26년, 조혜정 작가는 21년을 방송작가로 일했다. 냉혹한 프리랜서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며 좌절도 많았을테지만 이들은 작가 일이 재미있기에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박: 방송작가로 사는 삶은 어때요?조: 전 기본적으로 일이 재미있어요. 재미있으니까 계속 할 수 있는 거죠. 한창 나이 때는 아이디어를 매일 생각해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직업을 찾아봤는데 재미가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진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깨달았죠. 김: 기질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재미보다 힘듦을 느끼면 못 버티죠. 우리는 이 일이 재미있으니 오래할 수 있었던 거고요. 그런데 제 나이쯤 되니까, 트렌드가 되게 빨리 바뀌잖아요. '내 생각이 맞나?' 확신이 없어지기도 해요. 그래서 드라마도 써보고 하려고요.박: 책을 내신 적은 있잖아요?조: 드라마도 썼어요. 차은우가 주인공이었어요.김: '복수노트'라고, 저랑 제 친구랑 같이 썼어요. 시즌1, 시즌2 둘 다요. 조용히 묻혔었는데,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이 잘된 거예요. 로몬, 조이현 같은 친구들이 '복수노트'에 나왔거든요. 그때 잠깐 웨이브에서 1위 하기도 했어요. 하하!일 잘하는 작가로서 방송가에서 네임드가 된 두 사람, 어쩌다 송은이 회사에 함께하게 된 건지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비전 같은 걸 본 게 아니라, 그냥 '수다 떨며 밥이나 먹자'는 생각이었다고.박: 송은이 씨가 회사를 차린다고 했을 때, 어떤 비전을 보고 손을 잡으셨어요?김: 회사를 차린다고 해서 손을 잡은 건 아니었어요. 은이, 숙이가 그때 진짜 일이 없었고 상황이 안 좋아서 친구로서 같이 걱정했었거든요. 그때가 정치 팟캐스트 방송들이 한창 잘될 때였어요. 그런데 예능 팟캐스트는 없었어요. 마이크 사서 조그맣게 자기들끼리 시작을 한 거예요. 송은이가 "와서 회의나 같이 찌끄려. 밥이나 살게"라면서 시작한 거였고, 회사 얘긴 전혀 없었어요.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죠. 돈 받을 생각도 안 했어요. 우린 같이 일을 많이 했던 사람들이잖아요. 회의를 하다 보니 구성이 자꾸 나오는 거죠. 아이디어도 나오고. '재미있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슬슬 들 때쯤...한 달인가? 광고가 들어오더라고요. 그땐 직원도 없어서 제가 광고 전화를 받았어요. 근데 광고 시세를 모르니까 '얼마를 받아야 돼?' 하면서 헤맸었죠. 다른 팟캐스트 쪽에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박: 손 잡길 잘했다 싶으시겠어요.조: 저는 야망이 좀 있어요. 은이 '언니'로 시작해 그분이 대표가 됐잖아요? 든든한 분이 계셔서 안정이 돼있고요. 방송가 프리랜서계, 휘몰아치잖아요? 언제까지 방송작가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제가 "작가 그만두면 비보에서 한자리 해야지. 인사부장 해야지" 말하거든요. 남들은 농담으로 생각하지만 전 진지합니다. 한자리 차지해 비보에 눌러 앉아 쭉 가고 싶은 게 제 야망이에요.비보만의 복지도 궁금했다. 송은이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다니면 특히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봤다. 비보 직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 바로 '송은이가 쏜다'다.박: 내세울 만한 비보만의 복지 있나요?김: 자녀들 장학금 주고 그런 거요?박: 예컨대 휴게실에 안마기가 있다든지..김: 그건 당연히 있고요. 우리는 대표님이 뮤지컬 쏘는 날이 있어요. 티켓이 10여만 원 씩 하는 뮤지컬에 50명 다 데려간다든가 하는 이벤트요. 조: 근데 그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사실 오늘도 말씀하셨어요. 하하! 대표님과 절친한 정성화 씨 나온 '영웅' 보자고 공지해서 가능한 사람 모여서 보러 가기도 했고요. 초대권 절대 아니고 다 티켓 사서 가는 거예요. 김: '송은이가 쏜다' 하는 날이죠. 불시에 공지를 올려요. 박: '오늘 회식할 사람!'을 문화 회식으로 하는 거네요? 김: 진짜 회식하자고 하면 몇 명 안 오더니, 뮤지컬 때는 숨어있던 애들이 30~40명이 다 온다고...조: 얼마 전에 옥주현 씨 나온 '엘리자벳' 다 같이 봤어요.박: 대표님이 연예인인 것도 복지 아닐까요? 최애를 만날 수 있다거나, 사인을 받는다거나...조: 맞아요. 그런 거 정말 많이 해주세요. 대표님이 직원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스케줄이 있을 경우 시간만 맞으면 데려가 주시기도 하고요. 그게 여의치 않으면 사인을 받아주시고요.김: 성덕의 순간을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셈이에요.'방송인' 송은이는 친근하고, 바르고, 상냥하고, 똑똑하고, 인간적이고, 위트 있는 사람이다. 사업을 하는 '대표' 송은이는 어떤지 궁금했다. 온화한 눈웃음을 싹 지우고 냉철하게 상황 판단을 하는 사업가일지 말이다.박: 송은이 씨는 어떤 리더인가요?김: 방송에서 보시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조: 막내가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리더죠. 대표와 막내는 소통하기가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막내가 대표에게 말을 거는 것도 쉽고, 대표님도 그걸 잘 들어주시고요.박: 그런 부분을 보면 비보는 MZ들이 원하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요.김: 장난처럼 "너네 나 꼰대라고 무시해?"라고 하는 거지, 진짜 꼰대들과는 다르죠. 꼰대가 맞긴 한데, 말이 통하는 꼰대라고 할까. 전 어릴 때부터 봤잖아요? 천성이 해맑고 심플해요. 계산적인 면이 없어요. 대표를 맡는다는 건 복잡하고 예민한 일의 연속이잖아요? '쟤가 사업만 안 하면 저런 꼴 안 당해도 되는데...연예인만 하지'라며 안쓰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상황을 겪고도 자고 나면 다 까먹어요. 그런 성격이 사업할 때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박: 잠을 정말 '잘' 주무시나 봐요?김: 소통 잘되는 꼰대, 예민할 때 잠으로 극복, 업무 참여도가 상당히 높은 대표죠.박: 고정 프로그램도 많아서 상당히 바쁠 텐데요.김: 짬짬이 출근을 해요. 저희가 단톡방이 정말 많은데, 그 모든 방에 송은이 대표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죠. 회의를 다 참여하지는 못하죠, 물리적으로. 하지만 모든 과정에 다 함께하고 있어요.박: 대표님이 너무 열심히 일해서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조: 그런 건 있어요. 대표님이 정말 모든 일에 관여가 돼 있거든요. 출연도 하고, 편집도 보고, 회의도 하고 모든 것에 참여를 하시는데, '좀 놓으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있긴 해요. 근데 처음부터 모두 같이 시작하신 거라 쉽게 놓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긴 했죠. 요즘에는 세세한 공유 사항에 대해 본인 녹화가 끝나서 보고는 "잘했다" "재미있네요" 같은 피드백을 해주고 있어요.연예인이 운영하는 회사는 많다. 온라인 쇼핑몰을 비롯해 매니지먼트사, 제작사, 요식업 등, 'OOO의 회사'라는 건 그 업체가 연예인의 이미지를 팔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회사 홍보에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리스크로 돌아오기도 한다.박: 연예인이 운영하는 회사를 보는 잣대가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김: 하나의 꼼수라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연예인은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직업이니까. 별것 아닌 걸로 엄청나게 많은 기사가 나올 수도 있고요. 하다못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도 "송은이 회사에서 이거 막 버린다"라는 말 나오지 않게 신경을 쓴다든가 하죠. 회계 같은 문제는 당연히 철저해야 하고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가 없어요. 굉장히 원칙적이에요. 그 바탕에는 '송은이 회사'라는 게 크죠.박: 송은이 씨가 바른 이미지의 방송인이라 더 그러실 것 같아요. 그런 대표님의 가장 멋진 점은 뭘까요?김: (조작가를 보며) 네가 얘기해.조: 멋있는 점이요? (한참을 생각한 뒤) 음...사람을 대할 때 진심을 다해 대하시는 걸 봤어요. 제가 은이 언니를 좋아하게 된 이유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게, 우리는 프리랜서여서 누가 하나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데 명절 때, 프로그램이 끝날 때 챙겨주시고, 사소한 걸 잊지 않고요. 지금도 후배들 정말 잘 챙기세요.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생각을 했죠. 저도 후배들을 잘 챙기게 됐어요.청취자들 사이에서 비보는 '일하고 싶은 회사'로 통한다. 비보에서 만든 여러 콘텐츠를 통해 유쾌하고 재기발랄하며 아이디어 넘치는 회사 분위기가 공개되기도 했고, 송은이 대표, 김숙 이사와 직원들이 스스럼 없이 지내는, 가족 같은 회사라는 이미지다. 실제로는 어떨까?박: 일하고 싶은 회사로 꼽히는 비보, 친동생이 입사한다면 어떨까요?김: 내가 걔랑 같이 일하기 싫어서 그렇지, 그게 아니면 좋은 회사 맞는 것 같아요.조: 저도 제 친동생이랑 같이 일하기 싫을 뿐이지 회사 자체는 자유롭고 좋아요. 근데 막상 들어왔다가 '생각한 게 아니네?' 하고 나가는 사람도 물론 있죠.박: 퇴사율이 높나요?김: 5명 들어오면 4명은 오래 가고, 1명 정도는 적응을 못하기도 해요.박: 그 정도면 훌륭한데요?조: 되게 가족 같은 분위기인데, 그게 성향에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김: 아이디어나 편집 스타일의 결이 맞지 않을 때 고민들을 많이 하고요. 단체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분위기인데 거기에 적응을 못하기도 하고요. 아무리 개인 생활을 존중해 준다고 해도요.조: 즐겁게 일하는 친구들이 다 오래 가더라고요. 실제로 누나가 먼저 입사를 하고 남동생이 이후 입사한 경우가 있어요. 남매가 같이 다녀요.김: 동생이 누나를 부러워 했대요. 동생은 좋은 대기업 다니다가 PD 일을 배워서 신입으로 들어온 거예요. 신입사원 채용할 때 정당하게 면접 보고, 시험 보고 들어왔어요.한편 이사인 김숙은 비보 소속 아티스트는 아니다. 김숙의 연예 활동 매니지먼트는 다른 엔터사에서 맡고 있다. 하지만 김숙은 비보 가족이고, 비보의 지분을 가진 '이사님'이다.박: 김숙 씨의 회사 내 포지션은 뭔가요?김: 지분 있는 이사예요. 연예인 활동은 소속사가 있지만 마음의 반 이상은 오랫동안 함께한 비보에 있는 거죠, 자신이 투자하고 같이 만든. 주인의식이 있어요.조: 송은이 김숙 두 분이 같이 만든 회사죠. 숙 이사님이 회사에 와서 컨펌을 하고 소통을 하는 건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늘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주세요.비보 안에는 미디어랩시소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도 있다. 소속 아티스트는 대표 송은이를 비롯해 신봉선, 안영미, 그리고 장항준 감독 등이다. 두 작가에게 영입을 원하는 연예인을 물어봤다. 박: 혹시 미디어랩시소에서 영입했으면 하는 셀럽, 생각해본 적 있나요?김: 유재석? 하하!조: 오면 정말 좋겠네요.김: 홍현희 제이쓴 부부도요.조: 저는 장도연, 배성재, 주우재? 코미디언들 많이 오면 좋겠어요. 배우도 들어오면 물론 좋고요. 나중에는 비보에서 시트콤이나 드라마도 하고 싶거든요. 배우 분들도 많이 모시면 좋을 것 같아서. 김: 씬스틸러 배우 분들, 관심 부탁 드려요.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컨텐츠랩비보, TV리포트 DB[막후TALK] 인터뷰②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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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람은 실제로 믹스커피를 좋아할까? [인터뷰]
[TV리포트=박설이 기자]군 입대 전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그리고 전역 후 복귀작 '사랑의 이해', 두 작품 속 '짠내' 캐릭터인 혜영과 종현을 연기한 사람, 배우 정가람.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혜영, 왜 저러나 답답함을 유발하지만 짠해서 미워할 수만은 없는 종현, 모두 깊은 감정선을 요하는 로맨스이자 멜로였고, 정가람은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경력을 바탕으로 그 감정의 굴곡을 훌륭하게 펼쳐냈다.멜로를 가장한 하이퍼 리얼리즘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막을 내렸다. 정가람은 "종현의 역할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사랑의 이해'에 함께한 이유를 밝혔다. 종현은 극 중 매우 솔직하지만, 한편으로는 찌질함의 끝을 달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자의 원성을 많이 산 종현에 대해 정가람은 "캐릭터가 이해가 많이 됐다"고 말하며, 자신과 종현 사이 '교집합'이 있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는 "욕을 먹을 수 있지만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면서 "뒤로 갈수록 찌질함, 자격지심에 대한 말들이 많았는데 그게 오히려 현실적인 반응인 것 같아 좋았다"라고 만족했다."20대 초반, 미래 불안정했다"정가람이 종현 캐릭터에 이입할 수 있었던 것, 본인도 겪어봤던 20대 초반이 할 수 있는 고민 덕분이었다. 그는 "20대 초반, 미래가 불안정하지 않나. 저도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와 열심히 하다가 좌절도 많이 했었고, 그런 부분을 표현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자신의 경험을 종현에 비췄다. 20대 초중반, 작품도 거의 못하고 오디션도 많이 떨어져 봤다는 정가람은 "서울에 처음 올라와 배우라는 직업을 택하고, 이 직업으로 먹고 살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지 않겠구나'라고 현실을 많이 자각했던 것 같다"라고 떠올렸다.나이뿐 아니다. 종현과 정가람은 사랑에 있어서도 일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내면의 찌질함. 그는 "찌질했던 모습들, 종현은 솔직하게 말을 한다. 창피해서 말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데 종현이는 솔직하다. 한편으론 멋있다. 사람들이 (종현의 그런 모습을) 안 좋아할지언정 정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점이 멋지다"라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질문 많이 받아 좋아...답답해도 다음화 보시더라"정가람도 '사랑의 이해' 속 캐릭터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에 공감하는 입장이다. 그는 "수영이가 이해 안 된다, 종현이 왜 그러냐? 상수는 왜 미경이를 두고 수영이를 좋아하냐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아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전역 후 첫 작품인만큼 모든 반응에 감사했다. 정가람은 "'재미있게 봤다'에서 끝이 아니지 않나. 어떻게든 다음화를 보시더라. 답답해 하면서도 보시고,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시고, 또 어느 지점에서 공감 되는 부분이 있기에 그러셨을 거다"라고 말했다.종현의 '찌질함' 강도가 높아질수록 시청자의 반응은 뜨거워졌다. "답답하다" "빨리 수영이 집에서 나가라" "공부나 해라" 같은 시청자의 평가에 정가람은 "종현과 수영이 회복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가지 않았나.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드라마가 잘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전작인 '좋아하면 울리는'에서도 주인공을 짝사랑한 경험이 있는 정가람. '사랑의 이해'에서도 일방적인 마음을 품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 결말은 달랐지만 결은 비슷하다. 하지만 정가람은 두 인물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두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좋알람'은 뒤로 갈수록 서로 잘돼서 깊어지는 느낌이었다면, ('사랑의 이해')는 초반에 짝사랑이었다가 멀어지는 관계여서 다르다고 생각을 했다. '좋알람'은 앱도 있고 판타지의 느낌이 있었다면, '사랑의 이해'는 좀 더 현실적인 부분이 많았다"라고 두 짝사랑 캐릭터의 차이를 전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원작이 있다는 것. 원작 팬들의 존재가 배우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정가람은 "'좋알람'은 좋아했던 웹툰이었는데 마니아층이 있어 부담이 있었다"면서도 "웹툰의 혜영이같은 사랑을 지지하는 편이다.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부담보다는 설렘이 컸다"고 말했다. '사랑의 이해' 속 종현에 대해서는 "원작도 원작이지만 내가 느끼는대로 표현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같이 하는 배우들이 워낙 좋아서 좋은 작품 만들면 좋겠다 했는데 1, 2화 다같이 보고 '이런 작품에 참여했다고?'하고 뿌듯했다"고 말했다."나라면? 그렇게 되기 전 끝냈을 것 같아"종현을 비롯, '사랑의 이해'의 네 캐릭터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시청자의 과몰입을 유발했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심적, 혹은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형태의 커플은 현실에 많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현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따지고 재고 눈치 보는 이해(利害)의 이야기에 정가람은 "(이런 사랑이) 있을법하지만,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수영을 찾아가지도, 돈을 받지도 않았을 것 같다"라고 종현과 자신의 차이를 짚어냈다. 그러면서 "처음 데이트했을 때는 설레는 마음이 있었지만 뒤에 가서는 억지로 데이트를 하고, 잘해보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안 되고. 상대방이 마음이 없다고 느끼지만 애써보고, 그렇지만 절실하지는 않은 것들, 이런 게 현실적이었다. 나였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끝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만으로 20대인 정가람은 아직 사랑을 믿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랑의 가치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내가 보는 것과 (상대방이 보는) 사랑의 가치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로 사랑의 정도가 비슷해야 좋겠지만 드라마에서의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면서 "'사랑이 무엇인 것 같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예전엔 마냥 좋은 거라 생각했다면 지금은 무섭다. 바라는대로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나. 기대하게 되고. 사랑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사랑의 이해'는 시청자에게 동질혼이라는 현실적 이슈를 던져주기도 했다. '사랑의 이해'에서 주인공들이 마음을 재고, 주변의 반응에 흔들리고, 끊임없이 고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가 처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정가람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마음이 중요하고, 사람의 관계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수준끼리 만나야 한다는 말이 많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라고 말했다."실제 커피 잘 안 마셔..제대 전 다리 부러졌다"네 인물의 경제적 수준, 취향 등을 담은 '커피 씬'은 '사랑의 이해' 시청자에게 많은 공감을 안긴 장면 중 하나다. 부유한 집 딸인 미경(금새록 분)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 없으며 바쁜 일상을 사는 직장인 상수(유연석 분)는 캡슐커피를, 바쁜 가운데서도 감성을 지키고 신중하고 정성스러운 성향의 수영(문가영 분)은 핸드드립 커피를, 가난하고 바쁜 청년 종현은 믹스커피를 마시는 장면으로 '차이'를 표현했다.하지만 현실의 정가람은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고. 그는 "믹스커피를 군대에서 많이 먹었다. 거기서 맛을 알았었다. 커피도 잘 탄다"면서도 "실제로는 (커피를) 잘 안 먹고, 에너지드링크를 많이 마신다"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군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에피소드를 물었다. 밀양 출신인 정가람은 갓 제대해 사회로 나온 청년 답게 군대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커지고, 사투리 억양까지 섞여 나왔다. 그는 "강원도에서 많이 추웠다. 서울이 많이 따뜻하더라"라며 "눈도 치우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전역 한 달 전에 다리가 부러졌다. 전역 얼마 안 남았을 때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다칠 일은 없을 줄 알았다"라고 떠올렸다. 부상의 이유는 '군대에서 축구 하다가'였다.정가람은 신이 난 듯 군 시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강원도에) 눈이 진짜 많이 온다. 어느 정도 많이 오냐면, 산간에 나무가 많은데 눈이 많이 오면 바람이 안 분다. 그럼 눈이 쌓이는데 나무가 다 부러진다"라고 무용담을 얘기하듯 털어놓으며 "근무 서는데 (무거운 눈에 나무가 부러져) 빠지직 빠지직 소리가 난다. 그걸 한 달 동안 치웠다. 사람들이 안 믿는다. 눈이 많이 와서 나무가 부러진다는 걸"이라면서 웃었다. '좋아하면 울리는' 이후 친해진 배우 송강에게 "전방으로 가는 걸 추천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드라마 끝나고 여행으로 힐링, MBTI는 INFP"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가, 정가람은 '사랑의 이해'의 엔딩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종현은 수영과 헤어진 뒤 각자의 길을 걷고, 경찰 시험에 합격해 경찰이 된다. 정가람은 "엔딩 너무 좋다. 경찰 시험에 붙어서 교통정리를 하다 시선이 느껴져 봤는데 수영이가 나를 보고 웃어 준다. 어미새가 아기새를 둥지에서 내보낸 것 같은 심정이 느껴졌다. 내 삶에서, 나를 성장 시켜주고 나에게 있어 다가갈 수 없지만 마음 한구석에 감사한 사람으로 남은 것이다"라고 엔딩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드라마를 마친 지 한 달, 정가람은 보라카이로 여행을 다녀 왔단다. "몇 년 동안 코로나, 군대 때문에 여행을 못 갔어서 오랜만에 가니 좋았다. 힐링의 시간이었다"고 밝힌 그는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사람은 거의 안 만난다"고 말했다. MBTI를 물었더니 INFP라고.모범생 같은 역을 주로 연기해온 정가람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그는 "(해보고 싶은 캐릭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액션도 해보고 싶고 장르물을 해보고 싶다"라며 "'더 글로리'와 '카지노'를 최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저 작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 있을까, 저렇게 꾸며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문신에 민소매 같은 거친 느낌으로 일탈도 해보고 싶다"라고 욕심을 드러냈다.배우라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고도 바랐다. 정가람은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 같다. 웹툰을 많이 보는데, 어떤 웹툰에 특별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평범하게 꾸준히 하는 게 제일 대단한 일이라는 말이 나와 멋있다고 생각했다. 건강하게, 꾸준히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사진=매니지먼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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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TALK] 황세연PD "우리가 EBS 광기의 집약체라고요?"(인터뷰①)
<박설이의 막후TALK> 막후(幕後)의 사람들, 나오는 사람이 아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EBS 웹예능 '딩대' 황세연 PD[TV리포트=박설이 기자] EBS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의 성인 버전 '딩동댕 대학교'. '딩동댕'을 검색하면 아이가 클릭할까 무서운 '딩동댕 대학교'가 상단에 뜬다는 터무니없는 지적 때문이었는지, '딩동댕 대학교'는 '딩대'라는 새 옷을 입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딴지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고 '딩대'는 꺾이지 않고 본때를 보여주고 있다.구독자 25만의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현 시점 EBS 간판 웹예능 '딩대'. 등장 캐릭터인 낄희교수(코끼리인 음대 교수)와 붱철(부엉이인 딩대 조교, 전공 불명) 인형이 나오기만 한다면 돈쭐을 내겠다는 딩대생('딩대' 구독자 애칭)들이 줄을 섰다."EBS 광기의 집약체"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교육방송의 이단아이자 효자인 '딩대'를 진두지휘하는 사람, MZ세대 한가운데에 있는 89년생(09학번) 황세연 PD다. '딩대' 시즌 4를 마친 뒤 만난 황 PD는 딩대생들에게 "많이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진심으로 인사했다. 그는 "커뮤니티, SNS에서 밈이 나오고, 패션지나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재미있는 제안을 많이 해주시는 건 다 딩대생들 덕분"이라고 말했다."우리가 EBS 광기의 집약체라고요?"Q__딩대, 대체 어떤 학교인가?A__모든 ‘어른이’들에게 열려있는 대학교다. (코끼리인) 낄희는 음대 교수고 (부엉이인) 붱철조교는 대학원생인데 어떤 논문을 써야 할지 모를 자율 전공이다. 팥차를 마시러 찾아오는 학생들(조교가 될지도 모를 게스트를 뜻함)도 자기들이 원하는 과에 다니고 있다. 다들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Q__'딩대=EBS 광기의 집약체'라는 말, 어떤가?A__감사하게 생각한. 제작진 회의나 촬영 현장을 보시면 더 광기가 진하다. '이걸 보면 더 재미있으실 건데'...온에어에 수위를 지켜야 하는 게 아쉽다. 붱철조교와 낄희교수가 텐션을 리드하는 게 신기해서인지, 덕분에 게스트들이 다른 데서는 안 하는 걸 신나게 하시는 경우가 많다. Q__교육적 가치를 가져가면서 병맛 콘텐츠를 만드는 것, 굉장히 힘들 것 같다.A__연출할 때 둘 사이 밸런스를 맞추는 데 제일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고, 또 어려운 부분이다. '딩대'의 특징은 교육적이고 공감할만한 아이템을 선정하고 디테일을 재미있게 채우는 것인데, 재미의 수위가 넘실댈 때는 PD로서 여러 가지 환경적 이유로 온에어 수위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시청자들 역시 ‘웹예능으로서의 딩대’에 기대하는 것과 EBS산 콘텐츠 '딩대’에 기대하는 것이 당연히 다른데, 기대에 모두 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불맛을 더 열린 마음으로 봐 주시길 바란다. 웹예능에 기대하는 것과 EBS라는 방송사에 기대하는 것이 당연히 다른데, 그 차이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 EBS인 걸 모르고 보시는 분이 있는 반면 'EBS가 왜 이렇게 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대내외적으로 ‘EBS 콘텐츠가 이런 식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구나’하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봐 주시길 바란다. 자막이나 CG를 구현할 때도 고민이다. 현장에서 나온 거친 정도를 그대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 밈이나 유행을 반영할 때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각별히 주의한다.Q__팬층이 탄탄한 프로그램이다. 메인 연출을 맡았을 때 부담은 없었나?A__시즌3부터 연출로 함께했다. 부담은 크게 없었다. 세계관이 워낙 잘 짜여있었고, PD 혼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 그간 해오던 제작진과 출연자 분들이 자리를 지켜 주셨기 때문에. 합류한 시점이 구독자 10만을 갓 넘었을 때였는데, 지금도 재미있지만 이 콘텐츠를 더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파이팅이 더 크게 있었다.Q__25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시청 추이, 주 시청층은 어떤가?A__1년간 연출을 맡으며 조회수를 보며 단기간 내에 유튜브 동향이 정말 많이 바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조회수 자체에 흐름이 있다기보다 알고리즘을 얼마나 타느냐가 (조회수 변화에) 직결이 된다. 어떤 주에는 특별히 그 시기 핫한 인물이 나온다거나 밈이 많이 만들어진 주간에는 조회수가 확실히 좋다. 시청층은 20~30대가 많고, 성비는 반반 정도다."낄희와 붱철은 2030의 노스탤지어"Q__25만 구독자 달성 즈음 붱철조교 이모티콘이 나왔다.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데...A__구독자 수를 염두하고 (이모티콘을) 출시했던 건 아니었다. 구독자들 요청이 많은 건 빠르게 내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인형 요청이 많은데 샘플링 작업을 여러 번 했지만 정확하게 낄희와 붱철의 모습을 구현하기 쉽지 않더라.올해 안을 목표로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과잠(학과 점퍼)도 사실 디자인은 다 됐는데 기본적으로 제작 단가가 높더라. 바람막이나 후드집업 등 가격이 합리적인 걸로 준비하고 있다. 딩대생 100만이 되면 고척돔에서 팬미팅을 고려해 보겠다.Q__안정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꾸준히 '어른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A__내용의 경우 타깃층의 진짜 고민, 실생활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화두를 택한다. 그걸 웃기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려 노력하는데 그것을 재미있게 봐 주시는 것 같다. 딩대생의 사연은 아이템 선정 후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모집을 하는데, 보내주신 사연 중 개인정보를 가리고 소개한다. 실제 고민들을 다루다 보니 가깝게 느껴 주신다.외피만 생각했을 때, 낄희와 붱철이가 그럴싸하게 본격적으로 앉아 2030세대의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나. 거기서 더 편안함을 느끼시는 것 같다. 캐릭터들이 고민을 얘기해주니 평가를 받는다는 느낌이 없다. 인물이 나와 '너 지금 못하고 있어' 혹은 '잘하고 있어' 하면 판단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텐데 낄희와 붱철이 앉아있으니 가 평가가 안 들어간다는 느낌이다.2030 세대들이 유년시절 '딩동댕 유치원'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노스텔지아가 있어서 거기에서 오는 다정함도 있을 거다. 성인이지만 아이의 느낌을 받고 싶을 때, 돌봄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불맛으로 다정함을 주는 게 매력이다.Q__2030 세대를 묶어 얘기하지만 이들 사이에도 세대 간 격차가 있다. 이를 아우르는 '딩대'만의 노하우가 있을까?A__인물이나 사연을 나이대가 아닌, 최대한 개별적으로 보려 한다. 특정 세대로 묶기보단 '이건 이 사람의 사연'으로 보려 하지, '이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라는 접근하지는 않는다.여러 세대가 보기에 위화감이 없이 느껴졌다면, 그건 제작진 안에 세대가 다양하기 때문일 거다. 03학번부터 01년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제작진이 다같이 모여 새벽까지 안건을 놓고 회의를 한다. 자신의 친구나 가족의 이야기인 듯 진심으로, 자기 나이대에서의 경험치를 담아 얘기하고, 그렇기에 '딩대'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MZ세대 관련 에피소드도 있었다. 시즌3에 'MZ오락관'이라고 있었다. M세대와 Z세대가 다르다는 취지로 단어 퀴즈를 내고 맞히는 내용이었는데 이때 '짤'도 많이 나오고 반응이 좋았었다.Q__자막과 썸네일에 신조어와 밈을 쓰는 센스가 심상치 않은데..A__자막은 작가가 초벌 자막을 쓰고, 이에 기초해 수정 자막을 다시 쓴다. 2~3명이 두어 번 씩 쓰는 것 같다. 초벌에서 재미있는 것을 살리고 (PD가 보면서) 더 웃긴 것, 재미있는 것을 넣으려고 한다. 자막 쓰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촬영과 온에어에 시간 차가 있다보니 한 주 한 주 트렌드를 살피고 자막 CG에 그 주의 트렌드를 반영하려 한다. Q__EBS에서 '명의' '장학퀴즈' '보니 하니'를 거쳐 '딩대' 연출자가 됐다.A__조연출이나 연출 초반은 소위 말하는 EBS 간판 교양 프로그램을 거쳤다. 이후 직접 기획했던 프로그램은 예능 색을 많이 띄었다. 그러다가 하하, 데프콘, 정상훈과 함께한 '뭐든지 뮤직박스'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파일럿으로 만들었던 채식 요리 대결 프로그램 '채소가지구'는 홍진경, 정재형과 했다. '딩대' 측도 제 경험이나 취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제안을 주셨다. 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 / 사진=EBS[막후TALK] 인터뷰②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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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TALK] '딩대' 황세연PD "춤추는 침착맨, 억텐 아닌 팀워크"(인터뷰②)
[막후TALK] 인터뷰①에 이어..[TV리포트=박설이 기자]'딩대'에서 선배라는 존재는 특별하다. MC인 동시에 구독자, 시청자가 이입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세계관에 온전히 스며들도록 돕는 안내자인 셈.광희, 황치열, 그리고 이말년(침착맨)이 선배의 자리를 거쳐갔다. 황세연 PD는 네 번째 시즌에서 이말년과 호흡을 맞췄다. 유튜브 정서의 인간화라 할 수 있는 이말년은 어쩌다 EBS '딩대'의 선배가 됐으며, 황세연 PD는 어떻게 "침착맨 딩대만 오면 열심히 한다", "침착맨 딩대에서는 다른 사람 된다" 등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까?"침착맨이 억텐? 팀워크의 산물"Q__광희, 황치열, 침착맨까지, MC 선배 캐스팅이 매번 의외다.A__'딩대' 세계관 속에서 낄희, 붱철과 어떤식으로든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인지 고민한다. 선배마다 케미는 서로 다르게 나오더라도, 이 안에 들어왔을 때 이런 그림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 하고 그려지면 MC로 좋다. 황치열 선배의 경우 최신 트렌드는 잘 몰라도, 거기서 오는 러블리한 매력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심으로 즐기고 열심히 배우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다.침착맨 선배의 경우 웹툰 작가로 활동할 때부터 그분의 센스를 좋아했다. 지금은 침착맨으로 활동하면서 센스는 물론이거니와 (본인 채널의) 방송에서 토크나 사연을 재미있게 풀지 않나. '딩대'와 함께하면 독특한 케미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웹툰 작가 시절 '장학퀴즈' 게스트로 모셨었고, '보니하니'에도 출연하셨었다. 그 인연 덕분에 정말 바쁘신 와중에 감사히 응해주셨다.Q__침착맨이 '딩대'만 오면 텐션이 달라진다. 억텐(억지 텐션) 의혹도 있던데...A__어디까지가 대본인지 많이들 궁금해 하신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디테일은 자유롭게 더해주셨다. 가끔은 흥이 우러나와 직접 춤을 춰주시기도 했다. 안경을 쓰고 시낭송을 해 달라고 하거나 아이돌 안무를 추라고 하는 것은 방송반(제작진)의 디렉션이 들어간 부분이다.현장에서는 보통 카메라 너머에서 방송반이 춤을 추며 침착맨의 텐션을 끌어 올렸다. 현장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발랄해서 '어, 어' 하다가 같이 하는 식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EBS 안에서 '맑은 눈의 광인' 포지션을 담당할 수 있는 게 '딩대'이고, 억압됐던 것이 해방되는 곳이다. 분위기가 늘 좋고, 신나게 하려 한다. 마지막 녹화 때 침착맨이 "다른 프로그램과 다르게 '딩대'는 나한테 이것저것 시켜서 다양한 그림이 나온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낄희와 붱철이의 존재감이 크다. 텐션 올리는 건 두 분이 주축으로 해준다. 때문에 침착맨 선배를 비롯해 출연자가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Q__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 또한 '딩대'의 매력이다. 섭외 기준이 있다면?A__아이템에 따라, 주제에 맞게 인물을 찾는다. 고정적으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닌데 전문가 섭외의 경우 '딩대' 세계관에 잘 녹아드시는 분들이 좋다.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전문의 같은 경우, 저희가 ‘인지용 쌤’하고 놀려도 재미있게 받아주셔서 딩대생들의 호감도도 높았다."붱철이의 플러팅? 저 빼고 다 좋아해요"Q__붱철이의 단독 이모티콘이 나왔을 정도로 '딩대'의 인기를 견인 중이다.A__붱철이는 한마디로 '짠내큐트'다. 대학원생인데 되게 격무에 시달린다. 2030 세대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시달리고 치이지 않나. 이 세대가 공감할 짠내 나는 구석이 부엉철이에게 있다. 그런데 부엉철이는 굴하지 않고, 참지 않는다. 불맛 나는 말을 뿜어내 딩대생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되게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게스트)을 말도 안 되게 놀리니까 그런 데서 쾌감을, 귀여움을 느끼는 것 같다. 지난 여름에는 실제 조교와의 대화 특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조교 분들의 사연을 정말 많이 보내주셨던 기억이 난다.요즘 붱철이와 나의 케미(?)를 많이들 좋아하시는데, 정말 억울하다. 제가 참여한 첫 녹화에 엔조이커플이 게스트로 나와서 붱철이와 연인 상황극을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 내 심박수가 높아졌던 게 화근이 됐다. 붱철 조교는 내가 자기만 보면 심장이 뛴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해보고 싶던 플러팅 멘트를 내게 연습하는 느낌이다. 왜 그걸 내게 하는지...사실 나만 빼고 다 붱철이의 플러팅을 좋아한다. PC로 보면 많이 본 구간이 표시되지 않나. (부엉철이가 플러팅하는) 그 구간이 가장 많이 본 구간인 경우가 진짜 많다. 소개팅 에피소드를 만들어서 소개팅을 시켜주는 스핀 오프도 괜찮을 것 같다.Q__개그맨 이재율이 붱철이의 팬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두 사람이 만날 계획은 없나?A__구독자 100만이 되면 팬미팅 게스트 정도로 생각해 보겠다."교육이 꼭 강연일 필요는 없죠"Q__교양 프로그램, 어린이 프로그램, 웹예능까지 다 해보셨다.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A__매 분야 다 어려운데, 어려운 지점이 다 다르다. 지금 하는 웹예능은 피드백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면, 반대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할 때는 진짜 타깃층인 어린이의 반응을 알 방법이 적어 어려웠다.보람을 느낄 때는 사랑을 받는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저희 팀이 댓글을 다 보고. 커뮤니티에 올려주신 것도 다 찾아본다. 감사하다. 더 실시간에 가깝게 소통하고 답변 드리고 싶은데 제작 여건 상 그러기 힘들다. 지켜봐 주시니 고맙다.Q__PD로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A__사람들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느 프로그램이면 좋겠다. 프로그램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트렌드도 계속 바뀌고 제작 환경도 많이 바뀌지 않나. 그런 가운데서도 바뀌지 않는 것은, 시청자가 사랑해주고, 이걸 두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마음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걸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Q__앞으로 '딩대'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A__회의할 때 제일 긴 시간을 차지하는 게 아이템 선정이다. 커뮤니티나 SNS, 뉴스를 진짜 많이 본다. 요즘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확인을 많이 한다. 그때그때 우리의 타깃층이 고민하는 것,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걸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기회가 된다면 야외 이벤트도 좀 더 해보고 싶다. 작년에 '딩대우유' 출시 기념 에피소드 때 직장인, 대학생들과 만났고, 구독자 20만 공약으로는 제주도에 갔었다. 야외에서의 그림을 신선하게 보시더라. 항상 스튜디오에 있다가 누구든 직접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 '딩대'가 나타나니 말이다. 가능하다면 딩대생과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사실 EBS 교육 콘텐츠의 결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다양한 세대를 겨냥해 콘텐츠를 만들 때 각 세대에 맞는 모양의 교육이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세대에게는 강연형 콘텐츠가 가장 좋고, 또 어떤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거다. 젊은 세대에게는 일방적, 하향적 강연보다는 재미있고 친근하게 접근하면서 단 한 줄의 메시지만 스며들어도 성공이다. 교육 콘텐에도 다양한 결이 필요하고, 지금보다 더 입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지점을 설득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딩대'가 그 근거가 됐으면 좋겠고, 그래서 '딩대'가 더 잘돼야 한다.‘딩대'를 통해 해보고 싶고, 들려드리고 싶은 게 많다. 최근에는 교환학생 계절학기 녹화로 '존버'(존중하며 버티기) 편을 촬영했다. ‘다들 사는 게 힘드니 발랄하게 '존버'하는 데 '딩대'가 보탬이 되면 좋겠다’가 결국 ‘딩대’에서 모든 에피소드에 걸쳐 전하고 싶은 핵심이다. 앞으로도 화요일 저녁 밥 친구처럼 '딩대'를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다.Q__25만 딩대생에게 인사의 말A__쏟아지는 유튜브 예능 콘텐츠 중 구독을 하며 애정을 갖고 계속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계속 성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뻔한 말이지만 보답하기 위해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저희끼리 항상 우스갯소리로 친구들 한 명 씩만 데려오면 금방 50만이 된다고 하는데, 더 많은 딩대생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돌아오는 새 학기에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겠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열린 제작진에 열린 시청자가 있어 EBS의 문턱은 예전보다 퍽 낮아졌지만 '교육방송'이라는 오랜 프레임을 부순다는 건 불가능하다. 트렌드와 정통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 EBS 제작진들이 풀어나갈 숙제이고, 황세연 PD와 '딩대' 제작진이 그 최전선에 서 있다.황세연 PD는 단 한 줄의 메시지만 전달돼도 '교육적인 콘텐츠'라고 말한다. EBS에 새로운 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분투 중인 MZ 제작진의 포부와 신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트렌디한 인사이트는 EBS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교육(Education)의 결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그 의미와 영역을 넓히고 있다.박설이 기자 manse@tvreport.co.kr / 사진=EBS